환원주의의 함정
환원주의의 함정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10.2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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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사물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깊이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찾고 그 요소들의 성질을 분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의 모든 철학과 과학은 이러한 방법으로 진리를 탐구한다.

예를 들어 보자. 물질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철은 왜 저렇게 강하고 전기를 잘 통하게 하고, 또 왜 저렇게 녹은 잘 스는지 알기 위해서는 철 원자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특성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렇게 큰 것을 작은 것으로 환원하여 연구하는 것을 환원주의(reductionism)라고 한다. 환원주의적 접근 방법은 과학이라는 학문이 성립하는 기초를 제공했고, 이 방법으로 엄청난 발전과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이다. 물질의 작은 단위인 나노 물질을 연구하는 나노 기술의 발달로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나게 빠른 컴퓨터를 만들었고 더 나아가 인공지능도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환원주의는 아주 큰 맹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환원주의가 옳다면 과학에서는 물리학만 남고 다른 모든 과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천문학 등은 없어져야 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화학은 분자들의 반응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분자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화학은 본질적으로 원자의 과학인 물리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은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세포는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결국 생물학은 분자의 과학인 화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원론적으로는 원자의 특성을 잘 알면 분자의 특성을 알고, 분자의 특성을 알면 세포의 특성을 알고 세포의 특성을 알면 생물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간의 간이라는 장기를 생각해 보자. 간의 기능을 화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복잡하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원자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래서 간을 연구하고 심장을 연구하는 의학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나 국가는 인간들이 모인 집단이다. 인간 개인의 특성으로부터 모든 사회현상과 국가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면 심리학자만 있으면 되지 사회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문화인류학자는 왜 필요하겠는가?

이 논리는 극단적 환원주의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잘 말해 주고 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생각이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를 잘 알면 된다는 생각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각자 따로 있을 때는 생각도 못했던 문제들이 생겨난다. 결혼 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내가 결정하면 되었지만 결혼하면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결혼하기 전의 두 사람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없던 현상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둘 그 이상이다. 셋도 되고 넷도 되고 무한이 되기도 한다.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었을 때는 부분이 가지고 있지 않던 특성이 생겨난다. 이것이 집단 특성이다. 집단 특성은 부분에는 없던 새로운 특성이다. 이렇게 집단이 나타내는 새로운 현상을 나는 맥락(context) 현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마음, 정신, 사랑, 군중심리, 국민성, 사회현상 등은 집단이 나타내는 맥락현상이다. 이런 맥락현상은 구성요소를 분석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범죄자를 처벌한다고 범죄가 근절되는 것은 아니다. 범죄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체는 전체적으로 보아야 알 수 있다. 나무를 연구한다고 숲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숲은 나무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무가 아니다.

사물을 볼 때, 분석적으로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나 분석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가끔씩 한발 물러서서 전체를 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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