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하기
나에게 선물하기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7.10.2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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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책 한 권을 읽었다. 7년 전에 사놓고 만지작거리며 벼르기만 하던 책이었다.

감동이 밀려온다. 책 내용에 대한 감동도 있었지만 잊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다 읽어냈다는 의지에 대한 감동이 더 크다.

이럴 땐 스스로에게 선물이라도 해야 한다.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책갈피를 하나 사서 그 책에 꽂아 두어야겠다. 이렇게 나는 나에게 선물하기를 즐긴다.

그런데 나에게 선물하기는 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부터 시작됐다.

20년 전, 직장을 옮긴지 3일 만에 전 직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즉각 다시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날 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자 마음 한구석에서 오기와 투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눈물어린 만류를 무릅쓰고 쓰라린 숙고의 과정을 거친 끝에 옮긴 직장인데 이렇게 포기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딱 6개월만 버티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시간을 이겨내고 연말을 맞았다. 견뎌낸 내가 대견했다. 그런 나에게 내가 선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심사숙고하여 고른 선물은 분에 넘치는 만년필이었다. 만년필을 고른 이유는 앞으로 회사를 떠날 때 내가 쓸 사표를 멋진 만년필로 쓰고 싶었다. 그 사표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만년필로 업무를 보며 14년을 더 다녔다.

그때부터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을 해내고 나면 나에게 선물을 주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런데 나에게 주는 선물을 고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해낸 일의 성격과도 맞아야 하고 두고두고 감탄할 만한 선물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담배를 끊고 난 후의 선물이다. 금연을 시작하면서 한 달을 버티면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한 달이 다 지나가는데도 선물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세월 따라 얼굴이 너무 차갑게 변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형은 할 수 없으니 안경을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30년 넘게 써온 가느다란 금테안경을 벗어버리고 굵은 뿔테안경으로 바꾸면 인상이 훨씬 부드러워 보일 것 같았다.

금연 한 달째 되는 날 무조건 안경점으로 달려가 뿔테안경을 맞췄다. 40년을 피워온 담배를 끊는 일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큰 사건이었지만 안경테를 바꾼 것도 그에 못지않은 사건이었다. 뿔테안경을 쓰고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금연에 걸맞는 선물이었다고 스스로 만족했다.

나에게 주는 선물은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이고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다.

남에게 드러내놓고 하기 어려운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했을 때 보상이 없다면 다음에 또 그런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행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자신에게 하는 선물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자신감의 고양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겠다는 발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선물은 남에게 하는 것, 남에게서 받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런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새로운 사고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나에게 선물하기를 권하고 싶다. 그 방법은 먼저 선물을 받고 할 만한 일을 정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힘겨운 일을 선택하면 중도에 포기하여 선물을 받을 수 없게 되니까 쉽게 할 수 있는 가볍지만 의미있는 일을 정하는 것이 요령이다.

그리고 거기에 알맞은 선물을 신중히 선택한다. 그런 다음 일을 마치면 즉시 정해 놓은 선물을 마련하여 스스로에게 선물하면 된다.

아이들에게 어떤 일에 대한 성취의 대가로 선물을 제시하듯 스스로에게도 평소에 갖고 싶었던 물건이나 하고 싶었던 일을 선물로 걸어놓고 일을 한다면 훨씬 재미있고 능률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선물하기는 어떤 일이라도 의미 있게 할 수 있고, 스스로를 칭찬하여 자존감을 높여주며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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