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마주하는 계절
글과 마주하는 계절
  • 이헌경<진천여중 사서교사>
  • 승인 2017.10.2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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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헌경

무르익은 서울의 가을과 마주하고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원, 여주, 금산에 이은 2017년도에 4번째로 문학 기행을 다녀오려 한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문화공간에서 “오세요, 오세요.”손짓하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우리 아이들이 사는 동네에는 미술관과 박물관 등 문화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여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어렵고 먼 이야기로 머물러 있다.

1학기가 끝나가는 6월부터 `윤동주'를 주제로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영화 `동주'를 통해 시인 윤동주의 삶과 시대를 살펴보고, 영화의 감동이 흐려지기 전에 그의 시집을 눈으로 마음으로 읽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다른 목소리와 해석을 가진 낭독의 시간은 잔잔한 호수 같았으며, 햇살 좋았던 9월의 교정에서의 시 쓰기 활동은 각자의 생각들이 넘실대는 파도 같았다.

아이들은 달랐다. 돗자리를 침대 삼아 누워서 시를 쓰는 아이, 친구의 등을 책상 삼아 쓰는 아이 등 활동 공간이 확대된 만큼 아이들의 자세도 감정도 자유로웠다. 아이들은 저마다 살아 있는 어휘들로 자신의 생각을 `시'라는 장르로 표출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대단하다. 그리고 즐거웠다.

`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으로 우리에게 한창 가까워진 이정명 작가 역시 그의 또 다른 소설에서 말하였다.

`엽서는 죄수들까지 변화시켰다. 욕지거리가 튀던 그들의 입에 웃음이 번졌다. 한 구절의 문장에 내일을 생각지 않던 자들이 살아서 나갈 날을 꼽았고, 싸움질을 일삼던 자들이 고분고분해졌다. 매일 일과처럼 벌어지던 싸움도, 자학 소동도 줄었다. 답장을 받아 쥐고 죄수복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자들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그것이 글이 지닌 힘일지도 모른다고. 모든 변화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변하게 했고, 한 자의 단어가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윤동주와 그의 시를 불태웠던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의 이야기를 그린 `별을 스치는 바람'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비인간적이고도 잔혹한 행태를 고발하면서도 윤동주의 삶과 시가 어우러져 개인적으로는 `글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다.

`한 권의 책은 누군가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낱말과 조사와 구두점이 모인 문장은 누군가에게 읽히는 순간 삶을 시작한다. 책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고, 헌책방과 도서관으로 긴 여행을 한다. 누군가의 가슴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거대한 우듬지를 이루는 동안 책장은 찢어지고 표지는 낡고 글자들은 바랜다. 그리고 어느 날 먼지와 어둠 속에서 숨을 거두지만 그 영혼은 우리 가슴속에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책은 죽지 않는다.'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할까. 글은, 책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또 하나의 생명인 것을. 그의 삶이 시로 모든 것이 설명되듯 우리의 삶도 한 편의 글로 적어보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윤동주를 만나러 서울로 문학 기행을 가는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그가 사랑하였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을 아이들과 함께 읊으며 출발하여야겠다. 그의 시를 마주한 시간만큼 단풍이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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