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오면
시장에 오면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10.2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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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창문을 열어 젖히니 카랑카랑한 바람이 밀려든다. 뜨거운 여름은 어디로 떠나고 딴 세상이 와 있다. 밖을 나오니 기대한 대로 살랑대는 바람이 반긴다. 오가는 사람들의 차림도 계절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무심천 둑길을 따라 1시간 이상을 걸어 시장에 도착한다. 시장에 오면 사람 냄새가 난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다.

한 아주머니가 시장에서 종이 포대를 깐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베지밀을 들고 계신다. 오후 3시가 넘어섰는데 그 시각까지 점심을 들지 않은 모양이다. 어머니도 베지밀을 좋아해서인지 여러 사람이 오가는 복잡한 곳에서도 그 광경이 눈에 확 들어온다. 땅바닥이 차가울 텐데 따뜻한 국물이라도 시켜 드시지 그것으로 허기나 메울지 모르겠다.

손님이라도 많으면 좋으련만 그 곁을 지나가는 동안에도 진열대에 손님이 달라붙질 않는다. 젊은 색시들이 입을 티셔츠와 옷가지를 팔고 있었는데, 그나마 준비한 옷가지가 몇 벌 되지 않는다. 손님을 끌려면 물건이 넉넉해야 하고 다양하게 상품을 마련해 놓아야 하는데 벌이가 좀체 없으신가 보다.

하긴 세상살이 늘 편하게 사는 사람 몇 되랴마는 시장에 올 때마다 그런 광경을 보면 늘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이를 보니 70은 넘어 보이는데 옷차림도 허술한 데다 고등 색깔 몸빼바지와 빛이 바랜 붉은색 스웨터를 입었는데, 날씨가 차가워지면 어떻게 겨울을 나실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옆 노점상에서 산 호떡을 드리는 게 어떠냐고 아내가 물어오는데 선뜻 드릴 수가 없다. 드리려는 마음과 달리 오해를 살 수 있어서다. 드리면 고마워하겠지만 오히려 자신의 처지와 살아온 나날에 대한 생각으로 거부감을 보일 수도 있어서다. 한 수 더 떠 자식에 대한 미안함으로 우리를 보고 눈물을 흘리실지도 모를 일이다. 그분이 늘 그런 생활에 익숙해 있어 지금 이대로가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발길을 돌리고 만다.

눈요기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찐빵집이 보인다. 옛날 생각도 나고 맛은 어떨까 하여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천 원을 내니 네 개씩이나 준다. 역시 인심 좋은 곳은 재래시장이다. 그 음식점에서 나와 시장통을 거닐다 보니 모락모락 김이 나는 두부 집이 눈에 띈다. 군침이 돈다. 이것으로 저녁을 대신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단돈 천원을 주고 두부 한 모를 받아든다.

떡집에 들러 떡도 한 접시 산다. “어쩜 이리 떡 색깔도 곱고, 그리 많이 줘요”하니 그 말이 고마운지 떡 반 접시 상당을 더 집어준다. 말 한마디에 천 원어치가 덤이다. 기분 좋은 오후 시간이 흘러간다.

시장에 오면 애 서는 여자처럼 왜 이리 먹고 싶은 게 많은지 모르겠다. 길거리에 놓인 것은 다 먹고 싶으니 이걸 어쩐담. 그 말에 아내는 웃기만 한다. 내 모습이 엄마 따라 시장에 온 어린애 같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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