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강요할 때 아니다
충성 강요할 때 아니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10.2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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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미국의 36대 대통령 `린든 존슨'은 입이 걸었다. 그날 따라 아랫사람 때문에 속상한 일도 있었던 모양이다. 측근들이 함께한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단순한 충성을 원하는 것이 아냐. 진짜 충성을 원한다구. 대낮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 항문에 냄새를 맡고 꽃향기가 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충성을 원한다구”.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은 차마 지면에 옮길 수 없을 정도로 표현이 저속해 대충 줄였다.

존슨은 자신의 판단과 지시에 일체의 토를 달지 않는 무조건 복종에도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참모에게서 의견이나 조언 따위는 필요 없고 자신의 심중을 미리 헤아려 박차를 맞춰 줄 감각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자신만이 가장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착각과 오만에 확신을 보태주는 것이 그가 기대한 충성이었다. 그는 베트남전의 수렁 속으로 미국을 끌어넣었다는 비판과 함께 차가워진 여론 앞에서 재선 도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유혁인씨(1999년 작고)는 1971년부터 1979년 10.26사태가 터질 때까지 9년간 청와대에서 정무비서관과 정무수석을 지냈던 인물이다. 그가 남긴 유고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 당시 내가 본,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누구 하나 대통령 앞에서 소위 직언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실제로 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다'. 그 대통령은 열렬히 총애했고, 그 대가로 영원한 충성을 맹세 받았던 수족 같던 측근의 총격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참모의 진언을 허용하지 않은 것도 그가 비극적 최후를 자초한 실책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 시대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흘렀지만 권력은 과거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 블랙 리스트를 강행했다가는 큰 사달을 겪게 될 것이라고 대통령에게 직언한 장관은 해외 출장 중에 경질 통보를 받았다. 자리를 건 충언은 충성이 아니라 항명이요 배신으로 폄하됐다.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 공무를 보던 장관의 귀국을 기다려주지도 않고 해고를 통보했다. 심기를 뒤튼 참모에게 줄 모멸감을 극대화하려는 졸렬한 방식의 권력 행사였다.

지난 2013년 10월 기무사령관이 갑자기 경질돼 배경을 놓고 구구한 억측이 돌았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전모가 드러났다.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이 인사 전횡으로 군내에 파벌과 갈등을 조성한다는 직보를 청와대에 올린 것이 화근이 됐다. 당시 장군 승진에서 호남 출신이 전무해 군 내부에 불만이 있다는 보고도 포함됐다. 군 통수권자가 헤아리고 고민해야 할 내용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진언에 대해 취임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기무사령관을 내치는 것으로 화답했다. 반면 김 장관은 청와대 안보실장을 맡으며 권부의 중심으로 상승했다.

그 대통령은 지금 국제사회의 동정을 구걸해 망명을 꾀하고 있다는 추측이 나돌 정도로 구차하기 짝이 없는 처지에 있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한 여당 의원이 아산 현충사에 걸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현판을 문제 삼았다. 문화재청장이 나름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답변하자 귀를 의심케 할 호통이 떨어졌다. “적폐 청산하라고 청장 만들어 드린 거 아닙니까”. 그렇잖아도 동시다발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적폐 정국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이 늘어가는 시점이다. 매단 지 50년이나 된 사당의 현판까지 느닷없이 적폐로 몰아가는 옹졸함도 그렇지만 문화재 관련 기관장까지 다그치며 인사권자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대목에서는 우려감을 떨칠 수 없다.

적폐를 규정하고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궁극의 목적은 드러난 적폐의 뿌리를 뽑아 재발을 원천 봉쇄하는 완벽한 제도의 구축일 것이다.

청와대나 여권에서 “사안의 경중을 가리고 선택과 집증의 전략으로 국민이 공감할 실체적 결과를 내는 데 주력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시점이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판까지 적폐 딱지를 붙여서야 되겠느냐는 이견조차도 공박 받는 서슬 퍼런 분위기에서 이런 소통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에릭 펠턴의 `위험한 충성'이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도덕적 불안감을 충성의 힘을 빌어 극복하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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