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무게
생명의 무게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 교사>
  • 승인 2017.10.19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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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친정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밀렸다. 평소보다 배가 넘는 시간을 도로에 깔았다. 거의 당도할 즈음이었다. 차 앞을 막아서는 하얀 털북숭이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조그만 강아지였다. 난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하얀 솜뭉치처럼 생긴 것이 천지를 분간 못 하고 도로 한가운데를 걸어오고 있었다. 차가 뭔지도 모르는 듯 계속 우리 차를 향해 여유롭게 걸어오고 우리는 멈춰 섰다. 한참 후 강아지는 차를 스쳐 도로를 걷고 있었다.

우리는 강아지를 멀리서부터 보았지만 다른 운전자는 강아지를 발견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차 문을 열었다. 남편은 나를 잡았다. 어쩌려고 나가느냐고. 그의 손을 뿌리치고 강아지를 안았다. 그리고 강아지가 나왔을 듯한 집을 찾아 나섰다. 그냥 길옆에 두고 오라고 소리치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마을로 향했다.

첫 번째 집 대문을 두드리자 중년의 아저씨가 나왔다. 강아지 주인을 아느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그다음 집을 두드렸다. 이번에도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었고 나는 강아지를 안고 되돌아섰다. 그때 나를 부르는 꼬마가 있었다. 이 집에 다니러 온 조카라 했다. 명절이라 왔다고. 강아지가 어디서 온 지를 알 것 같다고 했다. 꼬마와 난 십 분여를 걸어 어느 비닐하우스에 도착했다. 이리 먼 길을 이 꼬맹이 강아지가 어떻게 걸어 나왔을까 싶었다. 문도 없는 비닐하우스 입구에 개가 한 마리 목줄에 매여 있었다. 난 꼬마에게 말했다. “아니잖아. 저 개는 수놈이야, 젖이 안 부풀었잖아.” 꼬마는 대답한다. “분명히 이쪽에서 나왔어요.” 다시 비닐하우스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강아지를 안고 들어갔다.

거기였다. 안쪽에 젖이 늘어진 어미 개가 있었다. 주변에는 4마리의 강아지가 더 있었다. 흰 구름처럼 예쁜 것들이 하우스 안에서 꼬리를 흔들며 놀고 있었다. 난 얼른 손에 든 강아지를 어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한참을 그 예쁜 천사 같은 강아지를 보며 서 있었다. 근처에 주인이 있을까 싶어 소리쳐 불러도 보았으나 아무 기척이 없었다. 문득 도로 위에서 나를 기다릴 가족들이 떠올랐다. 강아지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다섯 마리 강아지가 나를 자꾸만 따라왔다. 어미 개는 목줄에 매여 있어서 새끼들을 잡아 둘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다시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강아지들이 우르르 나를 따라 들어왔다. 그러기를 몇 차례, 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비닐하우스 안과 밖을 맴돌고 있는데 남편이 차를 몰고 와 저만치서 나를 불렀다. 거기서 강아지랑 살 거냐고 소리를 쳤다. 사정이야기를 하자 그냥 빨리 오라고 했다. 나와 꼬마는 두 주먹을 쥐었다. “하나 둘 셋! 하면 우리 뛰는 거다!”라고 말하고 우리는 뛰기 시작했다. 강아지들도 따라 뛰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차를 탔다.

집에 돌아온 지금, 하늘엔 동전을 던져 놓은 듯한 달이 무겁게 걸려 있고 내 가슴엔 그 눈빛이 무겁게 박혀 있다. 나를 스치고 간 작지만 큰 생명의 무게를 새삼 느끼며 그들이 무사하길 다시 한 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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