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넋두리 좀 들어보소
내 넋두리 좀 들어보소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10.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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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저기는 인(人)내 나는 뭍, 언감생심 저 족속들과 놀아 볼 꿈은 꾸지 않는 것이 좋다. 에덴에서부터 욕망의 덫에 걸려버린 족속들과는 화합의 간극이 너무 멀기 때문이다.

저들은 우리만 보면 허벌나게 침을 흘리며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허파에 바람 든 우리 족속들이 저들의 꼬임에 넘어가 저 세상 가버린 수를 따지자면 인간 머릿수 못지않겠다. 하늘과 바람과 숲이 그대들의 전유물인 양 착각하지 마라. 우리도 풀밭에 나 앉아 나른한 춘곤증에 봄 꿈을 꾸고 만추에는 놀 빛 잎새와 더불어 물들어 가고 싶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내미는 것은 고사하고 박차고 뛰어올라 세상 구경하는 우리를 종종 보았을 것이다.

오늘도 객꾼들이 꼬여 들어 수궁을 위협한다. 부디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튀는 놈이 있어 제 명대로 못살고 가는 일이 허다하다. 당신이나 우리나 본분을 지키지 못하면 탈이 나서 영창을 가든지 제 명을 재촉하는 것이 큰 문제이다.

철없는 우리 족속들 기어코 물을 박차고 튀어 오른다. 수궁보다 더 좋은 화원이라도 있나 싶어 두리번거린다. 그야말로 찰나에 보는 인간 세상은 내가 봐도 눈부시다. 이놈 저놈 덩달아 올라 보지만 이내 곤두박질 친다. 겨드랑이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물속에서만 살아 지느러미로 퇴화해 버린 날개가 아닌가 싶어 밤마다 그 날개가 자라 퍼덕이는 꿈을 꾼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 수궁까지 들려온다. 내다보니 유난히 마음이 가서 눈도장을 찍었다. 자칭 글쟁이들이라는데 가는 가을을 붙들고 `아쉽다'고 요란을 떤다. 세월 가는 안타까움을 애먼 가을에다 풀어내고 있다.

저기 물가에 앉은 족속들 좀 보게나. 갈고리 걸어놓고 내 식솔들 몇이나 붙들었는지 입들이 헤벌쭉 벌어졌다.

인정머리 없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인간들이 가끔 어린 것들을 붙잡았다가 놓아준다. 횡액을 면하고 무사 귀환을 하는데 그 속셈을 모르는 어린것들을 다그치느라 입씨름을 하곤 한다.

유행인가? 시야를 넓혀보니 앞다투어 둘레길 만든다고 멀쩡한 땅 생채기를 낸다. 길이야 다니면 절로 생기는 것을 몹쓸 족속들, 당장 즐기자고 제 무덤 제가 파는 줄 모르고 사방천지 절단 내는 소리 넌덜머리가 난다. 불나방 같은 인생, 저 족속들은 알고나 있을까. 수백 년을 족히 살고 갈 기세다. 일그러진 산세가 탄식한다. 저기 뭍에서는 쉰 방귀 소리만 요란하다.

해가 뉘엿뉘엿 진다.

산속 찻집 차향 그윽하고 마당 장작불에 낙엽 타는 냄새가 진하다. 연기는 가을을 타고 하늘로 오르고 종내에는 그림자조차 사라진다. 글쟁이들 둘러앉아 세상 이야기하는 사이 또 낙엽 하나가 바람에 홀려 순식간에 제 몸을 사른다.

생각해보니 저기 뭍이나 수궁이나 사는 건 매한가지다.

먹고 싸고 내질러 놓는 것이나 정신 못 차리면 모가지 달아나는 것이 크게 다른 바 없다. 하여 물똥 싸며 튀어 오를 일도 없다. 공연히 허망한 꿈에 매달리는 내 족속들 다독거려 이제는 내실을 기하여야겠다.

넋두리 한 판 하고 나니 가슴이 뻐엉- 뚫렸다.

이제 수궁으로 돌아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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