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과 대동법
`남한산성'과 대동법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7.10.1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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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남한산성을 떠올리면 여전히 참담하다. 그것이 소설이거나 영화이든, 혹은 주말이면 등산객이 몰려 현대의 찌든 삶의 찌꺼기를 쏟아내고 파전에 막걸리를 기울이는 행락장소로 변질되었더라도 치욕의 역사는 절절하다.

김훈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든 <남한산성>은 비장하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왕권국가. 그 삼전도에서의 치욕은 고스란히 역사의 비극으로 남아 있다. 삭풍이 휘몰아치는 산꼭대기의 성은 위태롭다. 백성은 추위와 굶주림에 얼어 죽고 굶어 죽는데, 외적의 총칼과 대포는 죽음에 죽음을 더하는 공포로 짓누르고 있다.

척화와 화친으로 나뉜 무수한 말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글'이 `길'이 되는 안간힘은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금언과 너무도 닮아 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은 그 `길'이 되고자하는 `글'조차 더욱 비겁한 시대. 왕권의 존엄성은 백성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목숨 또한 마찬가지여서 `길'을 아는 늙은 뱃사공은 그저 그 `길'을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벼슬아치로 인해 목숨을 잃으니, 그 겨울 언강에는 네 편과 내 편의 구별조차 무의미하다. 왕과 당파의 시대, 그토록 집요하게 변하지 않고 있는 그들만의 치열한 역사에 탄식하며 오래 전에 일독했던 재야사학자 이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다시 꺼내 읽는다.

노론은 그 후로 지금껏 참으로 모질게 살아있고, 끈질기게 지배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매국과 친일, 그리고 반민특위의 무산을 비롯한 현대사의 온갖 질곡에 이르기까지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속성은 떳떳이 드러내지 못하는 비굴한 역사이다.

병자호란의 시·공간에는 마지막 명나라 성절사로 이국에서 울분을 삼켜야 했던 김육(堉 1580~1658)이라는 문신도 있다. 효종과 현종 연간에 대동법 시행을 주장해 추진한 그는 충청도와 유난히 인연이 깊다. 음성현감과 충청도 관찰사를 지내며 백성의 조세와 요역의 감면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대동법을 확대 실시했다.

대동법은 한마디로 요즘 말하는「부자증세」의 개혁적이고 파격적인 정책이다. 호수별로 부과하던 세금을 토지 결수에 따르도록 하니, 당연히 땅을 많이 가진 부자의 세금부담이 늘어난다. 지금도 그렇듯이 양반과 부자 등 기득권 세력은 반발했고, 송시열을 비롯한 반대의 핵심세력인 노론은 대동법을 급진정책으로 규정해 오히려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주장했다.

<남한산성>에 담긴 역사는 지금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현재진행형과 너무도 닮아 있다. 영화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이 엇갈리고, 아파트가 집이 아닌 돈이 되는 현실을 경계하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취임사조차 무색하다.

<남한산성>에서 나라의 위기와 극복의 지혜를 읽을 수도 있고, 기득권이 아닌 `날쇠'와 `나루'같은 민중의 무시되는 목숨에 대한 서러움을 비통해하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모질게 뿌리박은 돈과 권력의 치열함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역사는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대동법과 금속활자, 화폐에 이르기까지 충청도와 깊은 인연이 있는 김육(堉)이 송시열만큼 대접받거나 평가받지 못하고 있음은 진보와 개혁성향에 따른 역사적 차별이 아닌가.

스탠퍼드대 인문학부 교수 발터 샤이델의 근작 <불평등의 역사>에는 인류 역사상 평화적인 방법으로 불평등이 해소된 적이 없다는 역설이 적혀 있다. `역사인식 결핍증'을 경계하는 것인데, 매국노 이완용의 국정교과서 찬성의견서가 되살아나는 망령의 시대.

「역사서 잃기가 싫어진다/ 알고 나면 언제나 눈물 흘리네/ 어진 이는 반드시 화를 입고/ 간신들은 도리어 출세한다」는 김육의 탄식이 사라질 수 있을까. 1주년을 앞둔 `촛불'을 우리 모두가 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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