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경찰에 기소권을
차라리 경찰에 기소권을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7.10.16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고등학생이 만들었어도 이보단 낫겠다.”

법무부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신설 방안이 지난 15일 인터넷으로 전해지자 곧바로 올라온 댓글이다.

이 뉴스는 이날 보도된 다른 어떤 뉴스보다도 댓글이 폭주했다. 각 언론사의 관련 속보가 포털에 올라올 때마다 댓글이 쇄도했는데 비판적인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우선 누리꾼들을 가장 화나게 한 것은 수사 대상을 터무니없이 제한, 축소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현역 장성과 금융감독원 임원을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방산 비리와 금융 비리를 제1순위로 척결해야 할 정부가 되레 군과 금감원을 `성역'으로 만들어놨다는 비아냥이 잇따랐다. “대통령도 수사 대상인데 비리 장성과 금감원 임원이 빠진 것은 말도 안 된다”, “제일 물이 썩어 있는 곳을 보호하려 한다” 등 황당하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또 애초 법무·검찰개혁위의 권고안에는 중앙행정기관 등의 고위 공무원단이 모두 수사 대상에 포함됐으나 법무부 안에는 정무직 고위 공무원만 포함하는 것으로 대폭 축소됐다. 이 때문에 8200여명에 달하는 수사 대상 인원이 2000명으로 줄어들 상황이다.

여기에다 공수처 규모와 수사 검사의 임기까지 크게 축소했다. 개혁위 권고안은 검사의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수사 검사 수를 최대 50명까지 두도록 했으나 법무부 안은 3년(연임 가능), 23명 이내로 축소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각각 5년, 4년인 상황에서 수사 검사의 임기를 3년으로 제한한 것에 대해서도 검사의 수사 의지를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법무부는 일단 한 발을 빼는 모습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16일 국정감사에서 정성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법무검찰개혁위 권고안보다 법무부 안이 후퇴했다”고 지적하자 “최종안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입법과정에서 조정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법무부가 스스로 국회에 `미흡하니 고쳐달라'고 요청한 꼴이다.

법무부의 인식이 이 정도라면 공수처의 설립 취지부터 다시 되짚어 봐야 한다. 공수처는 검찰 개혁을 염원하는 국민의 뜻에 따라 신설되는 기관이다. 국가 최고 법 집행 기관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권력과 부를 좇아온 `정치 검찰'에 환멸을 느낀 국민의 염원에서 탄생되는 초법적 기관이다. 하지만, 정작 주무 부처의 이 같은 `퇴보된' 인식이라면 그 끝은 뻔해 보인다.

그렇다면, 차라리 경찰에 `성역 없는' 영장 청구권을 주는 게 낫다. 경찰의 숙원이기도 한 `검찰의 기소 독점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다. `영장 남발로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검찰의 반박은 영장을 심사하는 판사에 대한 모독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경찰이 검사의 비리를 수사, 기소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근절할 수 있다.

“국민 혈세로 옥상옥(공수처)을 만들지 않고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검찰개혁 문제'를 왜 이렇게 어렵게 풀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제 만난 한 일선 경찰 간부의 말이 귀에 와 닿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