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령이 충주를 떠돌고 있다
망령이 충주를 떠돌고 있다
  • 윤원진 기자
  • 승인 2017.10.15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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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원진 차장(충주주재)

가을이다. 이 계절에는 인생의 의미 같은 걸 생각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

떨어지는 낙엽과 불현듯 가슴을 치는 서늘한 바람이 아니더라도 가을이면 왠지 마음이 무겁다.

사라져 가는 것들, 우리는 가을이란 계절에서 그걸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멸되는 것들 모두 이유가 있겠으나, 반드시 사라져야 할 것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최근 충주에서는 일제시대 망령이 옛도심을 활보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소설가 최용탁이 충주3.1운동기념사업회 커뮤니티에 게시한 이 글은 `갑자기, 하나의 망령이 충주에 떠돌고 있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한 망령이 귀를 덮는 군모에 각반을 차고 긴 칼을 옆에 낀 모습으로 충주 옛도심을 활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독자들은 살아난 망령이 느긋하게 떠돌며 `조선을 먹을 때'의 달콤한 기억을 읊조리는 대목에서야 망령이라는 것이 일제시대 침탈자이라고 알아차린다.

작가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충주 식산은행 충주지점 복원과 관련해 철거 대신 활용을 택한 지자체와 학자, 일부 시민단체의 결정이 결국 일제시대 망령을 불러냈다고 표현했다.

충주시는 2016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식산은행을 발견한 뒤 근대문화전시관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 훼손 정도가 심각해 철거 논란이 제기됐다. 그러나 건축학적으로 희소성이 있고 이를 활용해 일제의 수탈을 기억하고 반면교사로 삼자는 각계각층의 의견들이 제시되며 충주 식산은행은 보전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는 사이에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충주 최초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런데 시가 연구용역을 통해 식산은행을 미술관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알려지며, 근대문화전시관과 미술관 활용 사이에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에 따라 지역에서는 활용 논란보다는 애초 철거 논란으로 돌아가야한다는 분위기가 급격히 조성되고 있다.

한창희 전 충주시장은 본지 기고를 통해 식산은행 건물을 허물고 차라리 소녀상을 건립하자는 의견을 냈다.

한국 근현대사 역사학을 전공한 전홍식 교수(교통대)는 “건물을 그대로 존치하다가 수명이 다하면 철거해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식산은행을 다시 짓는 복원을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충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설을 쓰는 최용탁 작가가 식산은행 복원과 활용 논란을 일제강점기 망령에 비유하며 철거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들은 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은 역사도시 충주의 역사를 파괴하고 일본인들이 건립한 건물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픈 역사도 우리 역사인 것은 맞지만, 서대문형무소 등 침략자인 일본인들이 부끄러워하고 스스로의 반성을 촉구하며 피해자인 한국인의 옷깃을 여미는 곳을 보존하는 것이지 일본인들이 식민지 근대화의 상징물로 자랑해 마지않은 식산은행과 같은 식민지건물을 복원하자는 것은 일본인들이 왜곡한 역사에 다시 우리가 왜곡을 더하는 어리석은 작태라고 주장했다.

전홍식 교수는 “해방이후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식민사관을 청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음에도 아직도 미완이며 진행 중”이라며 “식민지시기를 미화하고 왜곡하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며 이러한 일제강점기의 왜곡되고 굴절된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몫”이라고 말했다.

최 작가의 글 처럼 2017년 현재 우리나라 땅에서 예전의 망령이 `덴노헤이카 반자이(천왕폐하만세)'를 외치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고민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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