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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만이 선물?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l승인2017.10.13l수정2017.10.1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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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고 오직 현재만이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또, 과거는 기억 속에 있고 미래는 꿈속에 있지만 오직 현재만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말도 있다. 모두 현재가 중요하고 현재만이 정말로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기하게도 영어의 present라는 말은 현재라는 의미도 있지만 선물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무튼 현재가 선물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데, 과거, 현재, 미래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다. 분명 과거와 미래 사이에 현재라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작년은 과거다. 어제도 과거다. 오늘 아침도 과거다. 1시간 전도 과거다. 1분 전도 과거다. 1초 전도 과거다. 마찬가지로 1초 후는 미래다. 그렇다면 0.1초 전은? 그것도 물론 과거다. 0.001초 후는? 그것은 물론 미래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디에 있는가? 참 난처해진다. 현재를 있다고 할 수 있는가? 현재를 순간이라고 한다면 순간은 길이가 있는가? 길이가 없는 시간도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참 난처해진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내가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라고 말하면 그땐 자네가 나를 결박해도 좋아. 나는 기꺼이 파멸의 길을 걷겠다.”라는 구절이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 나온다. 왜 괴테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죽음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괴테는 이미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한 말일까?

“날고 있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는 그 유명한 소피스트의 역설이 있다. 1미터 앞에 있는 과녁을 향해서 날아가는 화살을 생각해 보자. 그 화살이 과녁에 닿기 위해서는 그 중간 지점인 1/2미터 지점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1/2지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1/4지점을 통과해야 하고, 1/4지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1/8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이렇게 계속 논리를 전개해 보면 아무리 가까운 과녁이라도 그 과녁에 닿기까지는 무한히 많은 중간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점을 통과하는데 아무리 작은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무한히 많이 통과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화살은 조금도 진행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비슷한 논리로 토끼는 앞서 있는 거북이를 절대로 앞지를 수가 없다는 주장도 한다. 소피스트들은 이런 궤변을 즐겼던 것 같다.

아무튼 현재라는 것은 무한히 짧은 순간이고 무한히 짧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는 기억 속에 있고 미래는 꿈속에 있지만 현재는 어디에도 없다. 나라는 존재도 지나가버린 나와 아직 오지 않은 나만 존재한다. 과거의 나는 지나가버렸으니 존재하는 것은 아니요, 미래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역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나는 존재하는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런 논의를 부질없는 말장난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기억도 꿈도 모두 우리의 생각이다. 생각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이 혹시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장자의 나비 꿈 얘기도 마찬가지다. 꿈에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 깨어 보니 꿈이었다. 꿈속의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장자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 꿈속에 있는지, 장자가 나비 꿈속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지금 보이는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고 그래서 오직 현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없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마찬가지라는 말도 된다. 현재만 선물이 아니라, 과거도 선물, 미래도 선물이다. 인생이 통째로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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