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놀음
숫자놀음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7.10.1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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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열흘간의 연휴가 막을 내렸다. 취업준비생인 작은아이는 어른들의 곤란한 질문세례를 피해볼 요령으로 명절날 큰댁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차례에는 참석해야 한다는 남편의 완강함에 고집을 내려놓았다.

직장인인 큰딸은 긴 연휴가 횡재인양 여행갈 궁리하더니 명절을 보내고 제 동생을 데리고 남도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부부는 연휴 내내 영업을 했다. 결코 반갑지 않은 긴 휴일이었지만 그동안 부진했던 매출을 만회할 수 있을까 내심 기대를 했다.

전을 부치고 차례를 지내느라 큰집과 가게를 왔다 갔다 하며 장사를 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매출을 올려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다시 매출이 떨어질까 걱정이다.

올해는 유난히 닭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덩달아 닭을 매개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번도 버거운 조류독감을 두 번씩이나 감내해야했다. 그럼에도 숫자놀음을 하며 치킨가격을 인상하겠다는 BBQ의 발표는 소비자들의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점주들의 몫이 되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의 성추행논란도 한몫 거들었다. 숨 돌릴 새도 없이 살충제 계란파동과 살충제 닭까지 연달아 터지며 곤두박질 치는 매출에 날개를 달았다.

우리 부부도 줄어든 매출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금 여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더 이상 아이들의 학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큰돈을 지출해야 할 일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세자영업자로 우리 부부보다는 젊다는 것이다. 젊다는 것은 의욕 넘치게 일을 할 수 있는 뜻이기도 하지만 꼭 지출해야 할 돈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임대료 내기도 빠듯하다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짓는 그네들의 시름의 깊이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과연 이 땅에 안심하고 먹을 만한 닭이 있기는 할까. 끝도 없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인간들이 벌인 대가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동안 닭을 사육하는 방법이나 유통과정의 문제점은 곪을 대로 곪은 상처였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터질게 터지고 올게 왔다고 생각하지만 도덕성 불감, 안전성 불감, 갑질 논란에 소비자불신이라는 파괴력을 가득 담고 돌아온 부메랑은 힘없는 영세자영업자들을 짓눌렀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폐업을 고민하며 막막해할지 긴 연휴가 막을 내렸어도 결코 반갑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연휴 기간에 인천공항을 이용한 관광객이 200백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인산인해인 공항을 뉴스를 통해 보면서 불경기란 단어를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공항과 불경기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저 많은 사람의 절반만이라도 외국이 아닌 국내에서 지갑을 열었더라면 어땠을까.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부를 축적했다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사고가 비열하고 저급한 갑질 논란을 일으키고 제 뱃속만 챙기는 숫자놀음을 하는 것이다.

그 숫자놀음에는 누군가의 피땀으로 얼룩진 눈물과 한숨이 있음을 부디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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