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을 악용하는 사회
선행을 악용하는 사회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10.10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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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어려운 이웃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싶고 배고픔으로 고통받는다면 갖고 있는 빵이 적을지라도 나누고 싶어한다.

그러나 추석 연휴 내내 전국을 혼란에 빠트리게 한 `어금니 아빠'사건을 보며 타인을 위한 선행이 잘한 일인지 후회하게 만들었다.

친구의 딸을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이 모 씨. 그는 11년 전 희귀 난치병인 `거대 백악종'을 부녀가 함께 앓는다는 게 세상에 알려져 `어금니 아빠'로 불려온 인물이다. 거대 백악종은 치아와 뼈를 연결하는 백악질에 종양이 자라는 희소병으로 이 씨와 그의 딸이 같은 병을 앓는다는 사실이 지난 2006년 12월 한 방송사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수차례 이어진 얼굴 수술로 치아 중 어금니만 남아 많은 사람은 그를`어금니 아빠'로 불렀다. 부녀의 투병 사실이 수많은 독지가의 마음을 움직였고 방송 이후 전국적으로 성금 운동이 전개됐다. 그는 국토 대장정에 나섰고`어금니 아빠의 행복'이라는 책까지 출간하며 딸의 수술비 마련에 힘쓰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심지어는 미국까지 건너가 모금 활동을 했을 정도다. 성탄절에는 어려운 가정의 아동에게 선물을 주는 등 산타클로스 모습을 했던 그가 딸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피의자가 됐고, 의붓시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한 아내의 미심쩍은 자살마저 애틋한 순애보로 둔갑시킨 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하는 등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측은지심을 이용해 모은 성금으로 그는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호화 생활을 하는 등 이중생활을 했던 그였다. 타인의 고통에 눈감지 못해 이 씨 부녀의 치료비를 위해 모금에 동참했던 국민의 선행은 이 씨의 탐욕의 수단에 불과했다.

힘든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수많은 사람은 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금이 목적과 다르게 사용된다면 기부자들의 마음은 얼어붙기 마련이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슬로건을 앞세우며 구호활동을 벌였던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의 경우 지난해 특정감사 결과 2012년부터 3년 8개월 동안 사회 취약계층 급식봉사비 지원금 3700만원을 가로챈 직원을 비롯해 평가 서류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수상안전 강사 자격증을 부정 발급한 사실이 드러나 강등 처분된 직원이 있는 등 비위사실이 수두룩했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어려운 이웃을 눈물 나게 한 적십자사 직원의 비위행위가 알려지면서 적십자사 회비 모금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지난 2010년엔 이애주 국회의원이 전국 16개 지역 전체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의원은 한 지역 공동모금회 직원이 성금으로 10만원권 상품권 30매를 받은 후 모금 접수 일자를 조작해 용처가 모호했고, 모금현황을 알려주는 `사랑의 온도탑'을 매년 재활용하면서도 매년 1000만원 안팎의 제작비를 쓴 것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또한 2개 지역 공동모금회는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단란주점이나 술집에서 법인카드로 지출한 돈을 회비 명목으로 지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었다.

신영복 선생은 `남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산을 들 힘조차 없는 어려운 이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자 하는 선행이 악용될 수 있는 현실을 직면하고 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어금니 아빠 사건 탓에 어려운 이웃을 위한 모금의 손길이 줄어들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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