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이 총기산업을 부양하는 나라
의원이 총기산업을 부양하는 나라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7.10.09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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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 2014년 한국언론재단의 국외 취재 연수 공모에 선발돼 뉴욕 출장길에 오른 적이 있다. 국내 10여 개 언론사 기자들이 참가했는데 착륙 직후 JFK 공항에서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출국장을 빠져나오기 직전, 공항 보안 요원 서넛 이서 우리 일행을 한쪽에 몰아놓고 들고 있던 가방을 속속들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꽤나 고압적인 분위기 탓에 보통 당황해 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그 이유가 밝혀졌는데 모두가 허탈해하면서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가 일행을 대신해 기내에서 작성한 미국 입국 신고서가 문제였다. 노(NO)라고 답해야 할 곳에 예스(YES)라고 표시했다.

입국 신고서에 쓰인 질문-당신은 총포 도검류를 소지하고 있는가, 규제 약물(마약 등) 복용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는가, 동식물을 반입하는가, 병원체나 세포 배양물을 지니고 있는가 등-에 죄다 `예'라고 답한 것이다.

피부색이 다른 동양인 방문객이 무려 10여명이나 단체로, 총이나 칼을 들고, 마약까지 복용해서 처벌을 받고, 병원체를 지니고 입국하려 한다는데 놀라지 않을 공항 검색대 직원들이 어디 있겠나. 우리나라 공항이었다면 입국장 직원들이 단순 실수 탓인 해프닝으로 짐작,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일이었지만 미국 공항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정색을 하면서 일행을 불러 세워 다시 검사를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9·11 테러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철통 보안 시스템 구축을 자부했던 미국이 또다시 충격에 빠졌다. 지난 1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미치광이의 총기 난사로 59명의 사망자와 5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과연 미국의 보안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이다.

범인 스티븐 패덕(64)은 총기를 난사한 장소인 만달레이 베이 호텔 32층 스위트룸에 머문 나흘 동안 10개의 가방을 이용해 23정의 총기와 수백발의 탄약을 반입했다. 이 과정에서 호텔 보안 요원 누구에게도 제지를 받지 않았다.

패덕은 나흘간 호텔 방문에 `방해하지 마라'는 팻말을 내걸어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방 밖에 외부 감시용 CCTV까지 설치했다. 이 CCTV 카메라만 발견했어도 상황을 돌이켰을지도 모른다.

범죄 징후는 또 있었다. 범인은 네바다와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미 남서부 지역의 여러 주를 돌면서 소총과 권총, 산탄총 등을 1년 동안 33정이나 구입했다. 당연히 수사기관에서 요주의 인물로 관리됐어야 할 인물이었으나 그렇지 못했다.

미국 언론이 라스베이거스 총기 사고 후 연일 총기 규제 강화에 미온적인 집권 공화당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뉴욕타임스가 총기 산업 이익 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의 정치 후원금 기부 내역을 공개했다. 상원에서 존 매케인 의원(애리조나)이 774만달러(88억7000만원), 하원에서는 프렌치 힐 의원(아칸소)이 109만달러(12억5000만원)로 각각 1위를 차지했는데 하원에서는 전체 상위 100명 중 99명이 공화당 소속이었다.

총을 많이 팔아야 돈을 버는 NRA 회원사들. 이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들. 이래저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게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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