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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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7.09.2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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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이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은진미륵'이다. 정확히 말하면 충남 논산시 은진면에 있는 관촉사의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을 말하는데, 흔히 은진미륵으로 불리는 이 불상은 우리나라 보물 218호로 높이가 18m 20㎝나 되는 우리나라 최대의 석조 미륵불이다. 요즈음은 인적이 뜸하지만 예전에는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던 곳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에 막 올라갔던 어느 날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서 중대발표를 하셨다. 돌아오는 현충일에 은진미륵으로 가족 소풍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온 가족이 어디로 놀러 간다는 일은 흔치 않았던 터라 어린 마음에 현충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현충일이 다되어 가는데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지께는 어려워서 못 여쭙고 어머니께 물었더니 어머니는 별 기대를 하시지 않는 눈치였다. 결국 아버지의 눈치만 살피다가 현충일은 아무 일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그날 저녁 밥상머리에서 `은진미륵 언제가요?'하고 아버지께 따지듯 물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내년 현충일에 가자고 하시면서 나를 달래주셨다. 그런데 다음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현충일에 은진미륵을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약속은 해마다 되풀이되었는데도 말이다. 아마 그때부터 어디를 가보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을 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아버지께 어디를 가자고 졸라본 적이 없었다. 아마 같이 가자고 하셨어도 부모님을 따라나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은진미륵을 처음 가본 것은 그 후로 15년이 흐른 뒤였다. 방송국에 입사한 후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였다. 상하반신 불균형의 조화, 해학적인 웃음을 띤 미륵불 앞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큰 소리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뼛속 깊이 기독교도이신 아버지는 왜 은진미륵을 가자고 하셨을까? 해마다 약속을 부도내며 무슨 심정이셨을까?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마음은 아니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나에게 여행의 욕망을 심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성인에 되어 아버지 앞에서 은진미륵이라는 말만 꺼내도 아버지는 머쓱해하셨다. 그때 왜 은진미륵에 가자고 하셨는지, 왜 안 가셨는지 우리가 캐물어도 아무런 말씀 없이 그저 웃기만 하셨다.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몸이 불편하실 때도 다시 물었다. 그때도 눈을 지그시 감으시며 오랜만에 미소를 지으실 뿐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지께서 무슨 연유로 해마다 은진미륵을 가자고 하셨는지는 영원한 의문으로 남았지만 은진미륵은 내게 미지의 어느 곳을 향해 달려가는 꿈을 주었고, 떠날 날을 손꼽으며 기다리는 설렘의 심장을 선물했다.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에게 은진미륵 사건은 아버지를 추억하는 공식이 되었다. 이날도 아버지 묘 앞에서 어김없이 은진미륵을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슬그머니 눈시울을 훔치신다. 아버지에게 약속하시고 못 지켜 드린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원하시던 테니스 라켓을 사드린다고 약속하고도 평생 못 사드린 일, 퇴직하시면 멋진 해외여행을 보내드린다고 해놓고 못 지킨 일 등 마음에 걸리는 일이 너무 많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자식으로써도 부모님과 한 약속을 못 지킨 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단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어머니나 자식들을 추궁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단 한 번 약속을 어겨서 뒤에 남겨진 가족들이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추억하도록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처럼 바람 좋고 햇살 좋은 가을날, 아버지를 모시고 온 가족이 은진미륵으로 소풍을 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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