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화장실
대한민국 화장실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09.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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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화장실'앞에 `대한민국'을 붙이니 어색하다. 둘이 잘 안 맞는 단어 같다. 하나는 거창하고 하나는 더럽기 때문인 것 같다. 잘 붙여 쓰는 낱말이 있는 반면, 아무리 붙이려도 쉽지 않은 낱말이 있다. 이를테면 `예쁜 혁명'과 같이 말이다. 글쎄, 명예혁명 정도가 예쁜 혁명일 될 텐데, 그래도 혁명이라는 거친 이미지와 `예쁘다'는 말이 도통 맞지 않는다. 이와는 다르게, 아직 `검은 혁명'이라는 말은 없지만, `붉은 혁명', `녹색 혁명'등이 있었으니 앞으로 그런 말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혁명 또는 흑인 민권혁명처럼 말이다. 어쨌든 화장실 앞에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붙여보자.

`대한민국 화장실'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더러운 곳을 뜻할 수 있다. 정경유착 등과 같은 영화소재가 대한민국 화장실을 보여준다. 이건 은유다. 그러나 오늘 `대한민국 화장실'을 정말 말하려고 한다. 이건 은유도 직유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에 주의해주었으면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말이다. `한국'보다 더 위대한 `대한민국'말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한다면 한다는 감정을 화장실에서 느낀다.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느낄지 모르겠지만, 요즘 고속도로 화장실은 정말로 깨끗하고 심지어 풍광도 좋다.

초창기 깨끗한 화장실 운동을 주도한 것은 강릉 방향의 문막휴게소였던 것 같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공연히 들릴 만한 장소였으니 말이다.

깨끗한 화장실 1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6년 11월에는 논공(광주 방향)휴게소가 제18회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 수상이라고 `대통령상'을 받았으니, 거의 20년에 가까운 지난 이야기다.

찾아보니 2000년 제2회 대상이 문막휴게소였다. 제1회 대상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광교산 등산로 입구의 화장실이라는데 타지 사람들이 가볼 만한 곳은 아니어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문막휴게소를 시발점으로 전국의 고속도로 화장실이 깨끗해지기 시작했는데, 정말 놀라웠다. 들불처럼 번지더니 금세 전국고속도로 화장실이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위에서 말한 부조화의 조어로는 `노란 혁명'이었다(오줌이 노랗지 않은가). 휴게소의 가장 큰 목적인 화장실이 제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노란 혁명은 화장실의 `존재 이유'라는 거창한 철학에도 맞아떨어졌다.

개인적으로 공연히라도 들리는 곳은 과거 건설회사에서 호텔도 만들어놓았던 경부선의 금강휴게소인데, 워낙 장소도 좋지만 화장실에서 보이는 뫼와 물, 그리고 물에 비치는 뫼가 정말로 사람을 시원하게 만든다. 걸어서 휴게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보기 드문 휴게소다. 상행도 마찬가지로 진입할 수 있게 해놓아서 양방향 모두 누려볼 수 있는 장소다.

고전적인 곳으로 가장 좋은 곳은 승주 선암사의 뒷간이다. 정확하게는 `뒤ㅺ ㅏㄴ' (사이 ㅅ이 앞이 아니라 뒤에 붙은 꼴)으로 깊이도 깊이지만 어떻게 통풍시설을 잘해놓았는지 냄새가 나지 않는다. 칸막이가 낮아 일어서면 서로를 볼 수도 있고, 남녀도 건너편이라서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정말 시원하고 쾌적하다. 나무창살이라서 밖 경치가 잘 보인다. 물론 밖에서는 빛 때문에라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양변기도 가져다 놓았다.

대한민국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저력을 나는 화장실에서 느낀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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