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종시계
괘종시계
  • 김경수<수필가>
  • 승인 2017.09.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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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경수

어느 날 박노인의 큰소리가 담장을 넘었다. 박노인이 가족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현관 벽에 걸려 있던 괘종시계가 없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최신 디지털 시계가 숫자를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들 영규 또한 멍하니 서 있었고 영규의 처인 이여사는 안전부절하고 있었다. 그때 손자인 민오가 박노인에게 괘종시계가 너무 낡아 고물 장수에게 주었다고 했다. 그러자 박노인은 더욱 진노를 하였다. 영규는 민오에게 당장 그 고물장수와 괘종시계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그 순간 민오와 이여사는 막막하기만 했다. 왜냐하면 사실 괘종시계가 없어진 것은 몇 일전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괘종시계는 이 여사가 시집오기 전부터 이 집에서 종을 울리며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박노인은 그 종소리에 맞춰 그날의 일과가 시작되었고 빈틈없이 하루를 꾸려나갔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여사와 민오는 달랐다. 이 여사는 특히 조용한 밤에 종소리가 울리고 나면 이상한 생각을 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민오는 시계를 보며 볼일 볼 시간을 조율하고 있다가 나중에 시계 바늘이 가지 않는 것을 느꼈을 때는 화가 불쑥 치밀어 오르기도 하였다.

괘종시계는 때를 맞춰 태엽을 감아주어야만 한다는 것을 박노인은 가족들에게 늘 이르곤 하였다. 그나저나 이제와서 어렴풋한 고물장수의 행방과 어쩌면 이미 흔적조차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를 괘종시계를 어찌 찾는다는 말인가?

민오는 막상 찾아나섰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온 민오와 영규 내외는 착잡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박노인은 왜 너희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멋대로 버리느냐는 것이었다.

갈수록 집안 분위기는 서먹서먹 어색했고 영규는 식구들 사이에서 늘 어쩔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괘종시계를 가져간 고물장수를 만났다. 민오는 보자마자 괘종시계의 행방을 물어 보았다. 고물장수는 없어졌다고 했다가 민오가 집요하게 묻자 이번엔 모른다는 말투였다.

왠지 수상쩍게 여긴 민오는 그의 뒤를 밟아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냥 돌아갈까 망설이다가 그의 집 가까이 도착했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귀에 익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는 듣기 싫을 때도 있었고 미워할 때도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말끔히 씻겨져 나갔다. 민오가 제자리에 괘종시계를 걸어 놓고 시간을 맞추자 종소리를 울렸다. 박노인은 기분이 풀린 듯 밝은 웃음으로 괘종시계를 향해 걸어 나왔다. 어쩌면 괘종시계를 영원히 찾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벽을 차지하고 있었을까?

세상에는 바꾸려는 자와 바뀌는 것을 바라지 않는 자가 있다. 바꾸려는 자는 어떤 이유가 되었든 기존에 있는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 큰 만족스러운 것을 기대하는 자일 것이다.

그와 반대로 바뀌는 것을 바라지 않는 자는 기존에 있는 것들과 친숙해져 있거나 당연적이라고 여겨 지키고 받아들일려고 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대 변천의 물결에 비추어 변화의 삐걱거림을 어쩔 수 없는 귀결로 받아들여야 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바뀌는 것 모두가 원하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변화는 변화를 낳고 사람들은 그 변화에 부응하면서 또 다시 변화를 낳을 것이다. 변화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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