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뒷모습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7.09.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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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마당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이 힘이 없다. 등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매일같이 얼굴은 대면하면서도 등을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다. 눈도 입도 없는 등이 말을 하고 있었다. 등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저렇게 많다니 놀라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등도 그러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어느 날 친정집을 찾았다. 넓은 콩밭에서 어머니는 김을 매시고 계셨다. 바짝 마른 어머니의 등은 아버지의 부재를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어머니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가슴이 너무 아파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뒤돌아 왔던 기억이 난다.

결혼하기 전 나는 남편의 등에 기대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서로 직장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남편은 내가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오토바이를 타고 먼 길을 달려와 기다려 주곤 했다. 그해 겨울, 짧은 치마를 입은 나는 남편의 등에 기대어 속절없이 행복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추웠을 텐데도 남편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는 정말 넓고 따뜻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시댁에 처음 인사를 가던 날도 남편은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갔었다. 비포장 산길을 오토바이로 가려니 무섭기만 했다. 그래서 남편의 등에 바짝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등은 얼마나 믿음직하고 든든했는지 모른다. 그 연유 때문인지 떨리던 가슴도 진정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남편의 등은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쓸쓸해 보이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내 뒷모습이 궁금해졌다. 나의 등은 어떤 모습일까. 남편처럼 쓸쓸하다고 말하고 있을까? 아니면 힘들다고 말하고 있을까? 왠지 남편에게 미안해진다.

사람에게 있어 등은 그 만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친다. 과중한 업무로 피곤에 지친 아버지들의 등은 땅으로 꺼질 듯 무겁기만 하다. 공부에 지친 수험생들의 등은 하늘을 볼 수 없음인지 점점 작아지고, 자식 걱정 남편 걱정인 어머니들의 등은 한없이 불안하기만 하다. 자식을 위해 부모님들을 위해 얼굴은 괜찮다고 웃고 있지만 뒤에 숨어 있는 등은 힘들고, 외롭고, 고달픈 날들 때문에 우는 날이 더 많다.

사람의 첫인상은 그 사람의 앞모습, 특히 얼굴을 보고 결정한다고 한다. 사람관계에서 첫인상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첫인상은 곧 그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사업가는 일단 파트너로서 좋은 이미지를 줄 것이며, 친구를 맺고자 하는 사람은 호감을 느끼게 돼 바짝 가까워질 수 있다. 이렇게 앞모습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을 알려준다면 사람의 뒷모습은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삶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듯하다. 그 때문인지 외모지상주의 국가라는 오명까지 받고 있다. 취업을 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 성형수술을 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모습이 심사위원들의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잘 보이기를 위한 전략'에 부심한다. 그런데 요즘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분명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채용 변화일 것이며 혼란도 가져 올 것이라 본다. 그동안 명문대 출신과 스펙만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공식이 이제는 직무 관련성을 더 깊이 있게 본다니 지방대 출신도 어깨를 펴고 도전해도 될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이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가져 오길 빌어본다.

이제라도 보이는 것 전부가 되어버린 앞모습이 아닌,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가치인 뒷모습이 당당해지는 그런 사회가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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