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고 배경없는 게 죄인가
돈 없고 배경없는 게 죄인가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09.26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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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돈과 배경이 힘의 상징이 되었다.

대학을 입학할때도 좋은 직장에 입사할 때도 돈과 배경이 당락을 결정한다. 돈 없고 배경없는 청년들에게 취업은 넘기 힘든 장벽이다.

문재인 정부가 평등한 기회 보장과 공정한 평가를 위해 지난 7월 블라인드 채용 방안을 발표했다.

말로는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의 입사 지원서 및 면접에서 편견을 야기할 수 있는 출신지역, 가족관계, 신체적 조건, 학력에 대한 요구 항목을 삭제토록 규정해 오직 실력으로만 인재를 채용하겠다는 게 취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루가 멀다하고 돈 있고 배경 있는 집안 자녀들의 무임승차 입사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영어 강의를 듣고 수백장의 자기소개서를 쓰고도 합격 소식을 듣지 못하는 이 땅의 수많은 청년들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무임 승차한 이들의 소식은 달갑지 않다. 감사원이 올해 기획재정부 및 한국석유공사 등 53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채용 업무 전반을 점검한 결과 100건이 적발됐다.

채용 청탁에 관여한 인물도 유명 정치인부터 고위직 임원, 퇴직자 등 사회에서 내노라하는 계층들이다.

2013년 24명을 뽑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셨던 모 지원자는 2년 뒤인 2015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채용 비리가 폭로되면서 자신이 탈락한 이유를 알았다.

당시 중진공 부사장이었던 김범규씨는 “박철규 이사장이 최경환 의원을 만나고 와 (합격시켜선 안 되는 이를)`그냥 합격시키라'고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입사를 희망했던 직장에서 미래를 꿈꾸었을 이 지원자는 결국 돈과 권력 앞에 주저앉았다.

이 지원자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취업준비생들은 열명 뽑으면 서너명은 사전에 내정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지원한다. 나머지 대여섯 자리를 갖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끼리 싸운다. 사회에 나서기 전부터 이런 더러운 꼴을 겪고 시작한다는 것이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을 겪지 못한 청년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서울대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송기석 의원에게 제출한 `2013~2017학년도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입학생 중 국가장학금 신청자 소득분위 현황'에 따르면 올해 학종으로 입학해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학생 992명 중 418명이 월평균 가구소득 983만원(소득 9분위)이상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가구소득이 1295만원 이상인 소득 10분위 학생도 313명으로 조사됐다. 반면 소득 2분위(월평균 313만원) 이하로 분류돼 국가장학금을 받은 저소득층 학생은 전체의 25.2%인 250명에 불과했다.

금수저 전형으로 불리는 학종이 뜬금없는 소문은 아니었던 셈이다.

몇년 전 가족들과 스페인 여행을 떠났던 지인은 산티아고 길을 걷다 수많은 한국 대학생을 만났다. 처음엔 유명 관광지라서 순례길을 걷는 대학생이 많이 찾았겠거니 생각했는데 대화를 나누던 대학생 여러명으로부터 “스펙때문에 왔다”는 얘기를 듣고 잠시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찾는 산티아고길이 한국 대학생들에게는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는 또하나의 자격증이었다.

최근 유성엽 국회의원이 동료의원 103명과 함께 특정 출신지역으로 인한 차별인사를 법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특정지역 출신만 임명해선 안되는 것이 당연한 데 법안까지 만들어야 하는 게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돈이나 배경보다 중요한 것이 인성이라는 인사 담당자들의 선발조건이 언제쯤 현실화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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