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제
사직제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7.09.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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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사람이 넘친다. 도심공동화로 조용하던 거리가 오랜만에 들썩인다. 성안길과 중앙공원에서 열리는 청주성탈환 425주년 기념축제가 한몫하고 있다.

해마다 청주문화원에서 준비하는 행사로 주말에는 본행사가 집중적으로 열린다. 그중에 내 시선을 잡은 건 사직제였다. 청주에서 사직제를 지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직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작년 가을부터다.

알아두면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강원도 삼척에 사는 문우가 메일로 보내 준 `삼척사직단 사직제'의 사진과 설명을 보고 나서다.

제례의식을 완벽하게 원형대로 복원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삼척시가 문향과 예향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삼척의 사직제는 땅을 다스리는 사신과 곡식을 다스리는 직신에게 드리는 제상의 음식이 날것으로만 따로따로 차려져 있었다. 사용하는 제기와 제물, 제례복은 향교의 석전대제와 비슷했으나 장소가 달랐다.

석전대제와 달리 흙으로 사직단을 쌓고 기단은 석축으로 하여 단은 하나였다.

둘레는 담으로 둘러 사방에 홍살문을 세웠다. 평상복을 입고 담장 너머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조선시대에 머물고 있는 착각마저 들게 하는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사직제는 땅을 다스리는 사신(社神) 과 곡식을 다스리는 직신(稷神)에게 백성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다. `백성은 땅이 없으면 설 수 없고 곡식이 없으면 살 수 없다'며 중국 한나라 고조가 도성 안에 사직을 모신 사직단을 쌓고 제사를 지냄으로 시작된 행사다.

우리나라도 건국 초기부터 왕명에 의해 고을마다 사직단을 세우고 고을 수령이 친히 나아가 사직제를 올렸다. 조선시대 청주에도 서공원에 사직단을 쌓고 청주목사가 제관이 되어 예전에 따라 관행제를 지냈었다고 한다. 경술국치 후 일제가 사직제를 폐지해 사직단은 허물어지고 사직동이라는 지명만 남아 있는 것을 성안동 주민들이 복원해 재현하고 있는 행사라고 설명한다.

청주에서 지내는 사직제는 삼척사직제와 많이 달랐다. 기대를 하고 참여한 많은 시민과 달리 장소와 제물, 제례복은 초라했다. 초헌관과 아헌관, 종헌관을 비롯한 제관들의 진지함만 돋보였다. 사직제를 지켜보면서 전통제례의식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정신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일도 중요하나 청주시의 안녕과 시민화합, 도심재생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는 성안동 주민들의 애환과 절실함에 안타깝기도 했다.

성안길에는 철당간이 있고 전통시장인 육거리시장과 남석교가 있다. 중앙공원에 압각수도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3번째 사직제를 지냈다. 사직제도 삼척사직제처럼 제대로 지원받아서 사직단도 복원하고 완벽하게 지낸다면 도심공동화로 몸살을 앓는 청주의 중심지 성안길에 새로운 문화역사의 장이 열리지 않을까. 14번째의 사직제를 계기로 성안길에 사람의 물결이 다시 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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