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만원 굴비 세트
360만원 굴비 세트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7.09.25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생선 한 마리가 36만원이라니. 추석 명절 선물로 10마리 한 세트에 360만원인 굴비 세트가 나왔다. 롯데백화점이 20세트 한정판으로 출시했는데 불과 일주일도 안돼 벌써 15세트가 팔렸다.

서민들은 당연히 놀랄 만하다. 롯데백화점이 특상품으로 내놓은 1마리 36만원 짜리 굴비는 크기가 35cm 정도, 무게는 약 330g 내외다. 두 명이 식탁에서 한 끼 반찬으로 소화할 수 있는 크기다.

이것보다 작은 20여cm짜리 길이의 굴비는 값이 쑥 내려간다. 보통 10~20만원대로 무려 10~20배 가량 싸다. 중산층, 서민이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면 굴비의 크기와 맛의 차이는 비례할까. 도대체 한 마리에 36만원 짜리 굴비는 어떤 맛이 다를까.

식도락가들에 따르면 사실 별 차이가 없다. 크기에서 오는 식감의 차이 뿐이다.

실제 경제학자들은 비싼 굴비가 잘 팔리는 이유를 `심리적인 포만감'에서 찾는다. 받는 사람은 `정말 귀한 선물을 받았다'는 만족감을, 주는 사람은 `제대로 좋은 선물을 했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굴비가 처음 선물로 사서에 등장한 때는 1126년, 고려 17대 인종 때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중기의 척신 이자겸이 전라도 정주(현재의 영광군 법성포)에 귀양을 갔다가 현지 사람들이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맛있게 먹는 것을 보게 됐다. 복권을 꾀하던 그는 이때 절인 조기의 이름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의 굴비(掘非)라는 이름을 붙여 `정주굴비'라고 써 붙인 선물 세트를 인종에게 보냈다. 굽히거나 비굴하지 않고 훗날을 도모하며 잘 살고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는 유배지에서 1년 후 곧바로 병사했다. 한때 왕을 꿈꿨던 사나이. 그가 최후에 말년에 남긴 것은 허무하게도 굴비라는 이름뿐 이었다.

국내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굴비의 본산, 영광 법성포의 상인들이 추석 명절을 맞고도 시큰둥한 표정들이다. 지난해 처음 시행된 `김영란법'에 따라 예년보다 턱없이 줄어든 매출 때문이다.

영광군에 따르면 올 설 굴비 판매액은 전년 1200억원에서 780억원으로 35% 줄었다. 이번 추석 매출도 한 걱정이다. 지난해 1350억원보다 30%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굴비 뿐이 아니다. 한우 시장 역시 추석 대목을 앞두고도 썰렁하다. 이미 1년 내내 침체 상황인 화훼시장, 음식업계 등도 추석 대목은 옛 얘기다.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에 강효상 의원이 대표 발의한 김영란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3만, 5만원으로 돼 있는 음식과 선물 상한을 10만원으로 올리고 축·부의금을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추자는 게 의안의 골자다. 이 자리에 출석한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 “대통령께서 일부 (김영란법) 영향 업종의 매출 감소, 소비 위축, 특히 농가의 피해 이런 부분에 대해 지적이 있으셨고 또 소관 부처로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어쨌든 반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수선이 필요해 보이는 `부정청탁금지법'. 본래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개정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