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파는 상점
그리움을 파는 상점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7.09.2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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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걷기는 건강에 좋고 더불어 새로운 취미를 갖게 한다. 동네를 거닐며 상점의 표정 엿보기다. 그렇다고 음흉하게 그들의 속내를 엿보자는 건 아니다.

물건을 각양각색으로 진열한 모습이나 상점을 알리고자 붙은 광고와 간판까지 볼거리이다. 내가 즐겨 찾는 상점에 관심두기이다. 어쩌다 상점 주인과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묵례하거나 인사를 나눈다.

율량동으로 이사 와 세 번째 가을을 맞고 있다. 내가 머무는 아파트에서 1킬로미터 반경에 상점들이 즐비하다. 무수한 상점들 덕분에 율량동은 신도시로 불야성을 이룬다. 그러나 겉으로 보는 상점의 모습과 속내는 많이 다른가 보다. 예고 없이 문을 닫는 상점들이 늘어나 아쉬움을 더한다. 장사를 지속하는 상점이 있는가 하면, 업종이 여러 번 바뀐 곳도 있다. 아예 임대를 놓는다는 딱지가 붙박이로 붙어 문이 열릴 줄을 모른다.

그중에 여름내 문을 닫은 `서리서리'의 주인의 안부가 궁금하다. 몸이 안 좋아 쉰다는 내용의 글이 상점 유리창에 붙은 걸 보고, 그녀가 매우 아픈 건 아닌가 싶어 걱정되었다. 가을도 깊어지는데 상점의 문은 열릴 줄 모른다. 상점을 지날 때면, 어서 쾌차하여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곳을 지나간다.

돌아보니 `서리서리'는 그리움을 파는 상점이다. 예전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담아낸다. 잔치국수는 뭐니 뭐니 해도 국물 맛, `서리'주인은 굵직한 밴댕이로 국물을 우려내 국수를 말아준다. 호박과 당근, 파를 올린 잔치국수를 먹고 나면 온몸이 훈훈해진다. 무뚝뚝한 표정에 말없이 자기 일에 열중인 여주인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음식에 대한 신뢰감은 절로 깊어진다. 스산한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는 날은 따끈한 잔치국수가 그립다. 그녀가 말아준 잔치국수를 먹고 나면 세상이 푸근해질 것 같다. 오늘은 더욱 그녀의 손맛이 그립다.

그리움을 파는 상점이 또 있다. 바로 `알천 만두'이다. 남자 주인이 직접 만두를 빚는데, 손놀림이 어찌나 빠른 지 눈 깜짝할 새에 만두를 빚어낸다. 알천만두도 직접 소비자에게 모든 걸 보여주기에 믿음이 가는 상점이다. 그 집 만두 맛을 본 사람은 맛을 잊지 못하여 멀리에서도 달려온다. 그런데 남자 주인이 손을 다쳐 두 달 남짓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그곳을 찾는 손님들은 그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걱정했으리라.

오늘도 어제와 다름 없이 상점 주변을 걷는다. 그가 만두를 재게 빚고 있다. 예전처럼 건강한 모습이라 정말 다행이다.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만두를 사는 사람도 있고, 식구와 만두를 빚던 옛 생각이 떠올라 그리움을 사는 사람도 있으리라.

어찌 보면 인간은 영원히 그리움을 먹고사는 건 아닐까 싶다. 부디 그리움을 파는 상점들이 무탈하기를 바란다. 서로 말은 안 해도 상대의 그리움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상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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