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달
가을 달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9.2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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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여름이 태양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달의 계절이다. 사시사철 빠짐없이 뜨고 지는 달이지만, 유독 가을 달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아마도 가을이 상념과 그리움의 철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과 가족이 그리워질 때, 사람들은 달을 바라보며 그리움의 정을 달래곤 한다. 평생을 고향을 떠나 타지를 떠돌던,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에게도 달은 가을이면 도지는 향수병을 달래주는 벗이었다.

달(月)

四更山吐月(사경산토월) 밤이 깊어서야 산은 달을 토해내고
殘夜水明樓(잔야수명누) 새벽 강물에 누각이 비치네
塵匣元開鏡(진갑원개경) 먼지 묻은 화장함을 방금 열고 나온 듯
風簾自上鉤(풍렴자상구) 창문주렴의 고리처럼 떠있는 조각달
兎應疑鶴髮(토응의학발) 토끼는 제 머리 학처럼 희다 걱정하고
蟾亦戀貂衣(담역연소의) 두꺼비 담비털의 따스함을 그리워하네.
斟酌姮娥寡(사작항아과) 불로장생약 훔친 항아 고독할 것 같은데
天寒奈九秋(천한나구추) 찬 기운이 쓸쓸한 이 가을 어찌 보낼는지?

시인은 달을 기다려 잠을 자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움이 병처럼 도지는 가을이 되었기 때문에 잠 못 들고 있었던 것이다. 방 안에서 가만히 있기에는 시인의 외로움이 너무나 컸다. 그래서 시인은 가을밤을 걷기로 마음먹는다. 그것도 한밤을 지나 새벽이 다 된 시각(四更)에 말이다.

밖으로 나온 시인에게 보인 것은 산이 방금 토해낸 달이었다. 그 달빛으로 인해 강물 속으로 누대가 비치고 있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아닐 수 없다. 그 달은 시인의 눈에는, 쓰지 않고 오래 묵혀 두어 먼지가 뽀얗게 앉은 화장 갑을 열고 나온 거울로 보이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주렴에 달린 둥근 고리로 보이기도 하였다. 화장 갑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거울은 임의 부재를 암시하는 것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주렴의 고리는 기다림을 상징하는 비유물이다.

시인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듯이 달 속을 응시한다. 흰 머리를 걱정하는 토끼, 따스함이 그리운 두꺼비가 그 속에 보이는데, 이들은 모두 늙어 흰 머리가 된, 그리고 고향과 가족의 따스한 정이 그리운, 시인 자신의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불로장생 약을 훔쳐 달로 달아난 항아(姮娥)의 고독한 모습인데, 이 또한 시인 자신의 투영이다.

가을은 달의 계절이다. 달은 그리움이고 외로움이고 기다림이다. 쓸쓸한 가을을 한탄만 할 일이 아니다. 가을밤 잠 못 이루어 힘들 때, 이부자리를 털고 길을 나서면 그 한탄은 절로 들어가고 만다. 하늘의 달이 그 따스한 눈으로 위로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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