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벌초
  • 임도순<수필가>
  • 승인 2017.09.2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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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도순

해뜨기 시작하면서 예취기의 요란한 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로 조상님의 안식처를 깔끔하게 정리하며 나는 소리다. 산소에 벌초하는 일은 오랜 세월을 두고 추석 전에 꼭 해야 할 의무로 자리 잡고 이어져 왔다.

예취기를 사용하는 벌초 작업이 당연해졌다. 예취기가 흔치 않을 때의 어르신들은 산소에서 큰 소리가 나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낫으로 꼼꼼하게 정리해야 조상님을 대하는 도리로 생각하여 조용하게 진행했었다. 그래서 예취기와 낫이 공존하는 기간이 몇 년 동안 지속하였으나 빠른 속도로 기계를 이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벌초에 참여하는 인력도 줄어들고 인식에 변화가 생겨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핵가족으로 빠르게 구성되면서 벌초에 대한 생각도 급격히 변화를 하고 있다. 장수 시대가 되면서 자손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은 넘겨주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고 있다. 요즈음에 이런 변화에 발맞추어 대행업체에 의뢰하는 일도 많이 늘었다.

장례가 매장 문화에서 화장으로 빠르게 변한다. 세상살이를 다하고 자연의 품으로 가는데 뜨거운 맛을 보아야 한다. 가루로 만들어져 항아리 속에 담기어 납골당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지내게 된다. 매장으로 자연에서 지내던 조상님들이 속속 화장되어 자손들이 찾아가기 편리한 곳에 만들어진 납골당으로 모셔진다. 몇 년 사이에 많은 묘지가 정리되어 가을 하늘에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던 예취기 돌리는 소리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은 벌초가 우리 문화 속에서 꿋꿋하게 이어간다.

교통수단이 좋지 않을 때는 걸어서 다녔다. 산소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있어 벌초하는 시간보다 오가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래도 여럿이 참여하여 위치와 방향에 따라 배분하였고 벌초가 끝나면 일정한 장소에 모여서 즐기던 때가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한두 시간씩 걸어가도 멀다는 생각보다는 조상님 산소를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어 힘든지를 몰랐다. 지금은 도로가 사방으로 잘 뚫리어 차로 십 분이면 충분한 거리라 격세지감을 느낀다.

우리는 휴일을 택하여 가족들이 모여 벌초를 한다. 해마다 음력으로 7월 말이나 팔월 초에 닿는 일요일로 날을 정하였다. 여럿이 모이지만 예취기를 멘 한 명이 대부분의 일을 하여도 모두가 참여한다는데 의미가 깊다. 지나온 이야기도 하고 조상님들의 발자취도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 오랜만에 고향의 산으로 다니며 숲에서 느끼는 자연의 맛을 온몸으로 부딪친다. 옛날의 정취도 느끼며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예취기의 요란한 소리는 해가 바뀔수록 줄어들고 있다. 우리 의식도 변하고 편리를 쫓아가는 생활로 빠르게 바뀌어간다. 그러나 내 마음속 깊이 뿌리 내린 벌초에 대한 생각은 변화하기를 거부한다. 그렇다고 현 상황에 잘잘못을 지적하며 따지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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