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의 젓가락
음양의 젓가락
  • 이영숙<시인>
  • 승인 2017.09.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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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숙

짝, 단짝은 참 정겨운 말이다. 스마트폰 1순위를 누르면 `짝'이라고 뜬다. 삼십 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남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스마트폰에 저장된 다른 이들의 카톡 창을 살펴보다 심장이 쿵쿵했다. 두 달 전 금산 하늘물빛정원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다. 여고 동창생인 그녀와는 서로 하는 일이나 취미가 달라서 이따금 생각날 때 `카톡'으로 `보고 싶다. 밥 먹자'하는 단순한 관계다. 분기별로 만나는 사이, 그러고 보니 항상 계절이 바뀔 무렵 우리는 만났다. 그녀는 남자들 사이에서 튼튼한 중소기업을 이끄는 유망한 사업가다. 외모는 연예인 최명길과 비슷한 가냘픈 이미지이지만, 사업에선 아주 뚝심 센 여걸 춘향이다. 큰살림하느라 만나는 사람이 수없이 많을 텐데도 그녀의 카톡 창 가득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 덩그러니 올라 있다.

누군가에게 짝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룸메이트인 남편 말고도 서너 명의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학교 동창, 문학단체, 직장, 교회, 고향 등 가까이 지내는 짝들이다. 이들은 태극처럼 음양으로 흐르며 함께 인생의 사계절을 운영하는 수레이다. 그야말로 젓가락 같은 짝들이다.

젓가락질은 참 정겨운 표현이다. 사실 양식 요리사인 선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포크 사용이 익숙했던 나는 아직도 젓가락질을 잘 못 한다. 결혼 전 첫 미팅에서 단무지를 집다가 젓가락이 어긋나 상대방 얼굴로 튕긴 트라우마가 있다. 그 이후 조심스러운 자리에선 어설픈 젓가락질 때문에 가까운 반찬만 집는다. 남편은 식사 때마다 길이를 맞춰가며 또닥거리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키득거린다. 어쨌든 지금은 꼬인 젓가락으로도 식사를 잘하니 우수한 젓가락 문화유전자를 받았음일까.

얼마 전 `젓가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한국인 이야기'라는 이어령 박사의『젓가락의 문화유전자』를 읽었다. 젓가락질을 잘 못 하는 나로서는 젓가락 같은 섬세한 활동이 뇌 활동을 자극하여 우리나라가 IC 산업 최강국에 이르렀다는 그의 주장에 관심이 갔다. 청주는 현존하는 최고 금속 활자본 직지를 비롯해 금속 문화, 청동 문화가 크게 발달한 곳이다. 청주 일원에서 출토한 금속 수저 유물은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 돼 있다. 저자는 젓가락이 짝의 문화, 정의 문화, 음양의 문화, 나눔의 문화, 음식을 받드는 사람들의 문화인 동시에 뇌 활동을 자극하는 고차원 문화라고 해석한다. 젓가락질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도 날로 뜨겁다고 하니 고급문화를 지닌 국가적 자긍심이 크다. 유럽은 한국의 젓가락과 숟가락을 수입하여 두뇌발달 교육콘텐츠로 응용하고 병원 쪽도 젓가락을 뇌 손상을 입은 환자들의 재활 치료법으로 활용한다니 감동이다. 젓가락의 효용성이 새롭게 감정받는 것 같아 뿌듯하다.

제각기 열심히 살다가 만나서 편하게 밥 먹는 일, 젓가락질을 함께하는 일은 단순히 밥 먹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 일은 짝과 함께 정을 나누는 일, 음양으로 순환하는 일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옷깃을 여밀 무렵 뇌리를 스치는 짝들에게 “가을 들녘이 참 풍요롭다. 우리 같이 밥 먹자.”는 카톡을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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