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인만 처벌해서 되겠나
하수인만 처벌해서 되겠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9.2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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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2013년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신입사원 채용공고를 냈다. 36명 채용에 지원자는 4500여명. 경쟁률이 125대 1에 달했다.

A씨는 1차 서류전형에서 2299등을 했다. 공단은 서류전형에서 170등까지를 뽑아 면접을 치를 계획이었다. 커트라인에서 까마득한 그의 탈락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공단이 그의 서류심사 점수를 부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각 평가항목의 점수를 조작해 순위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래도 A씨의 석차는 1200등까지 올라가는 데 그쳤다. 인사팀에는 그를 합격자로 만들라는 지시가 재차 떨어진다. 다시 점수조작이 시도되고 A씨는 176등까지 상승한다. 공단은 서류심사 통과 인원을 176등까지 늘리는 방식으로 기어이 그를 1차 합격자 명단에 올려놓는다. A씨는 면접 성적도 신통찮아 외부 면접위원들이 불합격 의견을 냈지만, 공단은 묵살하고 그를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했다. 서류전형서 8등을 한 지원자가 불합격하고 2299등이 합격하는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A씨는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 사무실의 인턴 출신이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A씨 사례가 도마에 오르며 최 의원이 공단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단 이사장과 운영지원실장은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돼 1심서 각각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사장은 법정서 최 의원의 청탁을 받아 A씨의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켰다고 폭로했다.

공단의 필사적인 A씨 살리기와 관련한 정황들이 최 의원을 향하고 있었지만 검찰은 이사장의 폭로가 있기 전까지는 손을 놓고 있었다. 공공기관의 반공공적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나 국민적 공분이 터진 지 1년 반이나 지난 지난 3월에야 최 의원은 불구속 기소됐다.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금융감독원 직원 채용 과정에서도 비리가 드러났다. 방식도 단순무식했다. 앞서 언급한 중소기업공단과 비슷했다. 필기시험 합격권에서 탈락한 지망자를 살리기 위해 합격인원을 계획보다 늘렸다. 그는 꼴찌로 필기시험을 통과하고도 당당히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흑막이 없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흘린 정직한 땀에 돌아갔어야 할 기회였다. 최종 면접이 끝나고도 예정에 없던 이른바 세평(世評)을 반영한다는 구실로 순위를 뒤집었다. 명색이 대한민국 금융권을 감독한다는 집단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들이 받는다는 평균 연봉 1억원은 누가, 무엇을 위해 베푸는 특전인지 국민은 묻고 있다.

앞서 드러난 강원랜드의 채용 비리는 가히 복마전을 방불한다. 내부 감사에서 2012년부터 2년간 뽑은 신입사원 518명 중 493명이 청탁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회사 인사팀의 청탁자 명단에는 자유한국당 권성동·염동열 의원 등의 이름이 올라 있다. 권 의원의 비서관 출신이 지난 2013년 33대 1의 경쟁을 뚫고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그는 자격 미달로 애시당초 서류심사 대상도 안됐다. 그러나 사장은 채용공고룰 내기도 전에 인사팀에 그를 합격시킬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는 평가자 주관이 반영되는 학력·경력 등 정량평가에서 만점을 받아 서류전형을 1위로 통과했다. 강원랜드에서는 청탁없이는 합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외부 개입이 난무했지만, 검찰은 지난 4월 당시 사장과 인사팀장만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두 의원에 대한 조사는 형식에 그쳤다. 권 의원은 수석보좌관만, 그것도 서면 조사만 했다. 20명 이상을 청탁 취업시킨 의혹을 받는 염 의원도 한 차례 서면 조사로 수사를 끝냈다.

연루 의혹을 받는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반박들이 수사기관에서는 무한 신뢰를 받는다. 갑을 관계에 엮여 청탁을 실행한 하수인들의 처벌에만 그친다면, 이 땅의 성실한 청춘들을 피눈물 흘리게 하는 채용비리 적폐는 청산할 수 없다. 주역은 못 본 척하고 조연들만 붙잡아 총대를 메게 하는 사법 불공정이 비리를 관행으로 고착시켜온 주범이다. 이번에도 금감원에 채용을 청탁한 배후를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중소기업공단과 강원랜드 채용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의원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와 상응하는 단죄가 따라야 한다. 이번 사태가 권력 앞에서는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걸리는 고장 난 법을 바로잡는 첫 걸음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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