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대한 자기 검열의 시대
권위에 대한 자기 검열의 시대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7.09.2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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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국방부가 공관병 제도를 폐지했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과 부인의 갑질이 화를 키웠다. 군은 130여명의 공관병을 전투부대로 전환하고 테니스장과 골프장에 투입된 인력도 철수시켰다. 때를 맞춰 경찰도 부속실에 배치된 의경과 서장급 이상의 운전의경 350여명을 일선으로 돌려보냈다. 정부는 8월 한 달 동안 의무 복무 중인 군과 경찰 등 6000여 명을 전수 조사해 57건의 갑질을 적발했다. 권위있는 곳에 갑질이 있었음이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의무 복무 중인 군경을 폐지하면 갑질이 없어질까. 이 말은 그 상황과 장소에 마침 공관병과 의경이 있었기 때문에 갑질이 생긴 것처럼 들린다. 성숙하지 못한 권위, 다시 말해 갑질은 저열한 권위의식 때문에 생겨났다. 권위의식없는 갑질은 없다. 을의 갑질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을질도 따지고 보면 권위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갑과 을도 아닌 제3의 병(丙)에게 권위의식이 있다면 병질이 될 게다. 단언컨대 장기판의 졸을 옮기듯 공관병과 운전의경을 자리 이동하는 것만으로는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다.

대체 인력의 대안이 없는 것도 문제다. 군은 공관병의 공백에 직업 군인이나 군무원을 배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경찰도 운전의경이 빠진 자리에 직업 경찰관을 배치할 계획이다. 군경 지휘관들은 자신의 팔다리를 조금 더 놀리거나 기존의 권위를 내려놓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무급의 의무 복무자들이 담당하던 자리를 유급의 직업 전문가들이 맡는다. 이런 식으로는 갑질을 근절할 수도 국민을 설득시킬 수도 없다. 지휘관의 알량한 권위 보전을 위해 국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순이니까.

인격에 차등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노동의 가치를 따지기 조심스럽지만 그동안 군경 지휘관들에게 병사와 의경이 배치된 것은 의무 복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전쟁을 대비하거나 국민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 없는 일을 시키면서도 전방에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심리가 은연중에 있었다. 그래서 군경의 전통적 업무와 동떨어진 일을 하거나 시키면서도 우리는 덜 민망하고 덜 면구스러웠다. 그런데 이 일을 직업 전문가들이 맡는다. 의무 복무도 아니고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도 아닌, 직업 전문가를 데려다 일을 시키겠다는 발상이 놀랍다.

내가 관서장의 운전기사가 된다면 굉장히 슬플 것 같다. 몸은 좀 편할지 모르겠으나 이게 과연 경찰이 할 일인가를 자문하며 괴로울 것이다. 나쁜 사람을 찾아내 벌하고 곤경에 처한 시민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일제 강점기의 인력거꾼처럼 관용차 안에서 관서장의 행사나 만찬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단순한 운전 노동자, 아니 운전기사. 내가 이러려고 경찰이 되었나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 몇 년 동안 형사법을 공부하고 사격술에 체포술까지 익힌 손으로 잡는 운전대는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아내와 가족들에겐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권위에 대한 자기 검열이 필요한 시대다. 크나 작으나 자기에게 주어진 권위에 대한 셀프 체크가 절실하다. 꼭 필요한 권위만 챙기고 나머지는 내려놓아야 한다. 관료조직을 이끌기 위해 어느 정도의 권위는 필요하지만 그 권위를 식탁에서나 운전, 청소 등으로 채우려는 봉건시대의 자세는 곤란하다. 누누이 해온 얘기지만 권위는 남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에서 저절로 생겨나야 한다. 성실한 가장은 소주병 놓인 개다리소반에서도 권위를 건진다. 갑질의 원인이 권위의식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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