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에서 듣는 브람스의 클라리넷
가을의 문턱에서 듣는 브람스의 클라리넷
  • 이현호<청주 대성초 교장>
  • 승인 2017.09.20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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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 이현호

9월에 접어들며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날씨도 서늘해지고 하늘은 옥색 빛으로 색감을 더하며 하늘 끝이 저 멀리 보이려 합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 가을에 어울리는 바람, 가을 달, 그리고 음악들이 내 가슴속을 서늘하게 흩고 지나갑니다. 그래서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요?

가을을 대표하는 음악가는 누가 뭐라 해도 평생 슈만의 아내 클라라만 바라보며 독신으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선율의 천재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곡가 브람스가 생각납니다.

브람스는 서양음악사의 한 획을 그은 작곡가입니다. 우리에겐 대학 축전 서곡으로도 아주 유명한 작곡가입니다. 브람스의 음악은 마치 고뇌하는 듯한 선율과 아름답고 우아한 소리로 마음속의 가을을 더욱 깊어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갈대 바람 소리로 우릴 설레게 하는 검은색의 클라리넷이 그 가을을 대표하는 악기인 것 같습니다.

브람스의 가을 음악 중에는 `클라리넷 5중주'가 가을의 정점에 선 음악인 거 같습니다.

만년의 브람스는 아름다운 클라리넷의 음색에 빠져 `클라리넷 3중주', `클라리넷 소나타'등을 작곡하면서 클라리넷 사랑에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브람스가 클라리넷 음악을 좋아했던 이유는 뮐펠트라는 클라리넷 연주가의 모차르트나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멋지게 연주하는 것을 듣고 당장에 그와 클라리넷에 환상적인 음색에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원래 오보에, 호른, 클라리넷 등 관악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그것들을 자기 곡에 많이 넣어 왔던 브람스는, 58세라는 나이에 이르러 청춘을 회상하면서 만년의 심경을 토로하는 데는 클라리넷만 한 악기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브람스는 1890년 `현악 4중주 제2번'을 완성하자 자기 창작력의 한계를 깨닫고 더 이상 대작에는 손을 대지 않으려고까지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듬해에 뮐펠트를 만나자 그 결심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뮐펠트가 브람스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른 것입니다.

브람스는 1891년에 먼저 `클라리넷 3중주곡'을 완성하자, 계속해서 `클라리넷 5중 주곡'을 썼고, 다시 3년 후에는 2곡의 `클라리넷 소나타'를 작곡했습니다. 그리하여 이것들이 모두 그의 만년의 걸작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에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브람스의 심경이 원숙한 기법으로 정말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규모가 큰 탄탄한 구성, 넘치는 아름다운 악상, 차분히 가라앉은 체관, 가슴을 찢는 듯한 비애, 그리고 헝가리적 색채 등이 브람스의 음악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클라리넷 5중주'곡은 `현악 4중주곡'에 클라리넷을 곁들인 것인데 또한 브람스는 이 5중주곡 에서 클라리넷 대신에 비올라를 써도 좋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곡 중 제2악장 아다지오는 중간부에서 클라리넷에 거장적 기교를 주면서 헝가리적 색채를 짙게 풍깁니다. 지난날의 청춘을 회고하는 듯한 노년으로 접어든 브람스의 창작의 정점인 이 곡은 특히 고뇌와 동경이 밤의 외로움에 흐느낌으로 다가오는 곡입니다. 전 4악장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악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 한 번 듣지 않고 맞이하는 가을은 가을도 아니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가을맞이 음악으로는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가 제격인 듯싶습니다.

가을과 함께 오는 삶의 허전함과 쓸쓸함마저도 기쁨과 환희로 승화시켜 놓고야 마는 브람스의 혜안에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입니다. 이 가을 브람스가 있어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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