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이 김지영을 만났을 때
허난설헌이 김지영을 만났을 때
  • 유현주<청주시립도서관 사서팀장>
  • 승인 2017.09.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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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유현주<청주시립도서관 사서팀장>

조선 중기를 살았던 허난설헌. 홍길동전을 지은 작가 허균의 누이 정도로만 아는 그녀는 실은 허균보다도 뛰어난 천재적인 詩才를 발휘한 시인이자 작가이고 화가이다.

난설헌은 외모가 뛰어났고 성품도 어질었다. 평소 난설헌은 책을 많이 읽었고, 많은 작품을 썼다. 글을 쓸 때에도 다독가(多讀家)답게 생각이 마치 샘솟듯 해서 풍부한 시어와 언어 구사력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노래했다. 이런 뛰어난 재능으로 사후에는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연이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 됨으로써 당대의 세계적인 여성 시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은 철저한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속을 썩이는 남편과 어린 나이에 요절한 자녀들, 모진 시집살이, 그리고 무엇보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사대부가에 태어나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에도 봉건의 굴레에 갇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점이 그녀의 삶을 한껏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 전“조선이라는 소천지(小天地)에 태어난 것과 더구나 여성으로 태어난 것과 남편 김성립의 처가 된 것이 평생의 삼한(三恨)이라.”고 말했다 하니,

시대상황, 사회제도, 가족관계 등 수많은 억압 속에서 누구의 아내로만 살아야 했던 조선시대에서 그녀의 눈부신 재능과 학식은 오히려 삶의 고통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몇백 년을 훌쩍 뛰어넘어 눈부신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에는 김지영씨가 산다.

그녀는 하반기 `책 읽는 청주'시민독서운동 대표도서인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결혼 3년 만에 딸을 낳았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은 출산과 동시에 육아 때문에 퇴사했다. 독박육아 몇 개월 만에 겨우 집을 나와 1500원짜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으면 `맘충(남편이 힘들게 벌어온 돈을 카페나 다니며 소비하는 이기적인 벌레)'이라는 말을 듣는 여성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을 읽은 여성 독자들은 하나같이 소설 속 김지영은 결코 허구적 인물이 아닌 자기 자신이고, 여자 친구이자 선후배들이라고 말한다.

조선에 살았던 여성이나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시대를 불문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부당한 대우는 여전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의 재능과 꿈은 좌절되기 일쑤다.

여성들은 가부장적 가풍 속에서 남자형제들에게 치이며 자라나고, 학교에서는 서열화와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다양한 시도나 도전은 생각할 수도 없어서, 수직적인 관계의 위계질서 속에서 일찌감치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암시에 갇혀버린다.

사회에 나와서도 `이래서 여자는 안 된다'는 비아냥과 `기왕이면 남자직원이었으면 좋겠다.'는 남성 위주로 짜인 직장이라는 토양을 이해하고, 최대한 덜 상처받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범죄의 대상이 되고, 내 집을 벗어나면 다른 남자들에게 김치녀 또는 맘충이라 불리게 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이야기를 쓴 조남주 작가는 청주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 그 평범하지만 위협적이고 절망적이고 불안한 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독자 분들과 계속 같이 고민하겠습니다.”

허난설헌에서 김지영까지의 삶을 들여다보던 나도 문득 궁금해진다.

조선의 허난설헌과 현대의 김지영이 만난다면, 그 시절의 김지영은 지금의 김지영에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그 답을 `82년생 김지영'에서 찾아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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