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과학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7.09.19 1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 정규호

문과반에 속해 고등학교를 다닌 나는 과학수업이 늘 곤혹스러웠다.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물리와 생물, 화학, 지구과학 등으로 나누어진 과학 과목의 다양한 숫자에 질리기도 했고, 또 주기율표를 비롯해 만유인력, 지질의 분포 등을 암기하다시피 해야 하는 부담은 학창시절 내내 떨쳐버리지 못한 악몽과도 같았다.

지금의 과학교육은 어떤 커리큘럼과 어느 과목으로 집중돼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과학은 나에게 여전히 인간적인 학문으로 손꼽기에 망설여지는 과목이다.

과학입국이라거나 과학을 통한 선진국의 능력 과시 등의 구호에 익숙한 만큼 어쩌면 나에게, 혹은 국가에 과학은 수단의 한 형식쯤으로 대접하고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겠다.

이러한 나의 편협한 생각은 이 땅의 순수하고 치열한 과학자들의 열정을 훼손할 수 있는 생각으로 비난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물리적이고 화학적이며, 생물학적 탐구의 근본적인 대상으로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핑계를 숨기지 못한 채,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는 사회과학이라는 명제를 별다른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음도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일이다.

이토록 형편없는 내 생각은 온전히 우둔하기 그지없는 스스로의 한계에서 비롯된 일인데, 과학은 도대체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끊이질 않는 것은 요즘 들어 높은 기대가 안타까움으로 전이되는 현상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벌써 2명의 과학계 인사가 낙마했다. 80%대를 치솟던 대통령의 인기는 벌써 우려의 조짐을 보이며 하락하고 있고, 그 인사가 만사라는 배경과 더불어 첨단 과학의 총아로 여겨지는 북풍의 첨단무기 도발이 그 추락에 부채질하고 있다.

풀어내기가 참으로 쉽지 않은 일들이다. 엄연히 휴전 중인 한반도의 현실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갈등을 헤쳐나갈 엄두도 쉽지 않고, 남북한의 대화를 위한 진정성은 강대국으로부터 의심받으며 외면당하고 있다.

박성진, 박기영 두 사람의 과학계 인사들은 결국 잊혀진 인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인간 사회의 집요한 반발에도 버틸 수 있는 만큼 자리에 연연하다 끝내 견디지 못하고 물러나면서 만들고만 안팎의 상처는 의외로 크니, 인간적 처사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언젠가 “세상에 발명은 없다. 발견만 있을 뿐…”이라는 글을 읽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게다가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마저도 한 때 우주의 근원을 살피던 중 “신을 보았다”라는 말을 남기고 연구를 중단했던 일을 떠올리면, 과학은 도대체 인간에게 무엇인가? 라는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참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간 세상이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의 자질문제에 대한 과학계의 결정적 주장은 `창조과학'이다. 창조과학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유사과학, 즉 기독교 근본주의 종교운동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위안과 천국의 길을 약속받으려는 `개인의 신앙차원'으로 모면하려던 두둔에도 불구하고 반지성과 비과학이라는 인간 세상의 평가를 받은 것이니, 종교와 과학의 경계는 때때로 엄격하다. 연구 윤리에 대해 불신을 받은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후보의 낙마 역시 인간성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차질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낙하산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소위 3철의 무조건적 귀향에 환호하던 국민이 아니었던가.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근본을 흔드는 종교적 적폐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온갖 모순과 악연이 얼마나 깊게 뿌리를 박고 있는지 비로소 낱낱이 알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오는 22일은 69년 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공포된 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