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 YES NO
일상생활 - YES NO
  • 안승현<청주공예비엔날레 팀장>
  • 승인 2017.09.1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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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사무실 현관 옆 자그마한 공간에 한 떨기 꽃이 색다르게 피어 있다. 물은 자작자작해져 개구리밥이 흙바닥의 등고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녹색의 바탕에 보라색 꽃이 수줍게 피어 있다. 너른 녹색의 공간에 자그마하며 깊은 보라색이다. 높게 올라가는 하늘의 푸른색이 꽃 진자리에 갈색의 열매를 떨구는 때에 웬 보라색 꽃?

흰색의 목련이 꽃을 피우고, 연분홍 살구꽃이 생동의 시간을 이어받고, 개울 옆 노랑꽃창포가 연이어 피고, 하늘 높은 곳 진노랑의 금비를 내려주던 7월의 모감주 나무꽃도 이리 색다르진 않았던 듯싶은데, 유독 이 자그마한 꽃의 색이 나를 사로잡는다.

지난 여름 수련을 심었다. 월동을 위해 거둬들인 곳에 버려져 있던 흙에 물이 고이고 어떻게 뿌리를 내렸을지 모를 물옥잠화의 출현이다.

그러고 보니 이 시기에 피는 꽃은 유독 보라색계열의 꽃이 많은 듯싶다. 보라털 달개비, 투구꽃, 층꽃 등등….

꽃들의 세상에서 흰색, 노란색, 빨간색 계열의 꽃이 대다수이다. 그중에 보라색 꽃은 아주 미비한 숫자이다. 그래서 만물의 꽃들이 들어간 이 기간에 피는 것일까? 자신의 색을 보여주고 싶어서일까?

모두 결과를 만들어 내는 시기에 홀연히 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이때만 왜 이런 색이 많은 것인지?

퇴근 무렵 내민 결재판, 판에 적혀진 글자는 치맥. Yes. No, 다른 글자가 있었지만 유독 내 눈에 들어온 세 글자이다. 당연 YES, 그렇게 시작된 번개팅은 치맥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는 깊이를 더했다. 행사준비 과정에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다.

시작하는 날을 정해놓고 준비하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계획에 의해 일정 관리를 한다고는 하지만, 예견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다 보면 일의 본질을 되짚어 보고 깊이 생각하며 일을 하기란 녹녹치 않다. 긴 준비의 과정, 시간의 연속은 정해진 하루의 시점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출발을 시키기까지, 손님을 맞이하는 성대한 상차림만을 생각하다 보니 모두 정신없는 상황, 출발과 함께 상차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다음 상차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한 이야기는 더 커다란 꽃을 피우는 데 필요한 일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생각의 공유를 통해 결과들이 나온다.

그토록 화려한 시간의 나날에 피고 흩뿌려진 수많은 꽃잎보다 녹색의 바탕 위에 놓인 한 점의 보라색을 피워내는 시간이다.

어쩌면 이 짧은 시간 속에서 나온 이야기는 방대한 양의 소리를 통해 얻어낸 보라색 물감이 아닐는지?

각자들 자신의 위치에서 담당해온 일련의 과정과 결과를 충분히 검토하고 서로 다른 시각과 다양한 견해를 통해 담론을 이끌어 내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보라색 염료를 담고 있는 모든 것의 집약된 에너지는 색감의 깊이와 다양한 것들의 융합에서 이루어진, 직관력이 뛰어난 예술의 상징이다. 그래서 어느 색보다도 귀하다.

우린 지금 보라색 염료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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