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복이 나에게
왜 이런 복이 나에게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7.09.1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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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 백인혁

저녁이면 들려오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내려앉은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이리저리 뒤척이는 가운데 생각은 자꾸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거슬러 날아갑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옛말이 있듯이 요즘은 산과 들 어딜 가나 먹을 것이 풍성합니다. 이는 다 알고 보면 모든 식물이나 작물이 겨울 찬바람도 이겨내고 기나긴 가뭄과 뜨거운 햇살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며 열심히 살아준 결과물일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다 덮어놓고 지금 눈에 보이는 결실만을 바라보며 참 탐스럽기도 하다 또는 참 보기 좋다는 등의 생각을 하면서 `금년 한해 나의 인생농사 결실은 어떠한가?'돌아보게 됩니다.

정초에 밤잠을 아껴가며 궁리하고 설계한 계획들이 과연 어떤 결실로 나타날지 가늠해 봅니다. 그저 세월이 흘러가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나 싶기도 하고, 현실이 어려우니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허우적대다 지금까지 살아온 듯도 싶고, 나이가 들었다는 핑계로 되는대로 살아온 것 같기도 하는 등 여러 상념이 오고 갑니다.

이런 생각 끝에 황금벌판을 지나다 문득 작물이 결실을 맺어가는 과정에 미치자 하나의 감상이 들었습니다. 작물에 자기가 행복하거나 즐겁기 위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다 사용하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아니라고 답을 할 것 같았습니다. 그저 주어진 책무인지 모르지만 오로지 자기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더 많은 결실을 맺기 위해 온통 다 사용할 뿐이라고 답을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즐겁거나 행복하기 위해 저에게 주어진 많은 것을 사용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온 저는 훗날에 어떤 결실을 거둘 수 있을까 상상해보니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저에게 주어진 것들은 다 저를 위해 사용하라고 주어진 줄로 알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제 몫을 동생들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애쓰는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저에게 욕심이 많다 하시며 앞으로는 그러지 말고 동생들과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지금껏 제게 주어진 복된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눔에는 인색하거나 아예 그렇게 나눌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온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껏 무정물이라 여겼던 저 들판의 벼들은 저 자신까지도 온통 다 바쳐가면서 이룬 결실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주위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은 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후손을 위해 사용하거나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황금벌판의 장관을 펼치고 있는 벼에서 배웁니다. 풍성한 결실을 맺기 위해 저들에게 주어지는 환경에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맞서며 자신을 온통 다 내어줍니다. 또 그렇게 공들여 얻은 결실들을 다른 개체들이 자기들 살겠다고 다 빼앗아 가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의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동안 저의 삶에서 주어진 복된 것들을 좋아만 하고 저 자신의 행복과 쾌락을 위해 사용하는데 열을 올렸던 만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이나 행복, 뿌듯한 보람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저에게 주어진 복된 것들이지만 제가 저를 위해 다 쓰지 않고 가족이며 이웃들을 위해 아낌없이 다 내어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일 때 더 큰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행복과 보람이 이 한 생각을 종자 삼아 자라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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