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 서방과 견공
견 서방과 견공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09.1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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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어머니는 개를 대하는 마음이 어찌나 살가운지 마당에 적을 둔 자식쯤으로 여기신다. 동지섣달 긴긴밤엔 한뎃잠이 서러울까 봐 이불을 넣어주고, 염천 여름엔 견 서방의 초막 위에 그늘막을 치신다.

어쩐 일인지 견 서방은 이불을 패대기치고 밥그릇은 뒤집어엎기 예사다. 반항의 극치인 듯 발톱이 빠지도록 땅을 파헤치기도 한다. 그의 아낙이 출산하던 날도 구덩이를 파고 핏덩이를 숨겨두었다. 죽은 듯이 숨어 있어야 산다고 새끼에게 언질을 주었을 텐데 낑낑거리는 소리에 어이없는 지경을 보았다. 저들의 역사에 개입한 인간의 야만성을 낱낱이 기억하는 것일까.

늘 오라에 묶여 야성이 몸부림을 친다. 어떤 날은 목줄을 끊고 치솟는 객기로 반항하는데 억센 손길에 붙들려 목줄을 찰 때면 내 목에도 밧줄이 감긴 듯 답답해진다.

그런 견 서방의 심사를 자극하는 일이 있다. 집 앞 야산에 떠돌이 개가 떼를 지어 자주 눈에 띈다. 동가식서가숙하는 처지에 새끼까지 딸려 있다. 영혼까지 집시를 닮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거침없는 행보가 자유임은 분명하다. 집시 견은 앞산 둔덕에서, 견 서방은 처마 밑에서 마주 보고 논쟁을 벌인다. 쟁점이 무엇인지 알 만하다. 견 서방의 근본은 산천을 누비던 늑대인데 인간의 처마 밑에 붙들렸으니 그 구속에서 벗어나라는 충고가 있지 않았을까.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선택하라-' 는 뜻일 게다. 그들이 떠나고 나면 견 서방은 못내 착잡할 것이다.

이삼일에 한번 꼴로 오라를 풀어 준다. 질풍같이 내닫는 기세가 내 눈에는 몽고군의 말발굽보다 빠르다. 숨어 있던 고라니가 제풀에 놀라 도망가는데 붙들어 오는 일은 없다. 그리고 꿋꿋이 집으로 돌아온다. 견 서방은 절대 안전주의자였나?

지인이 기르던 견공을 맡기러 왔다. 졸지에 마당으로 내려앉아 견 서방이 되었다. 우리 견 서방이 위로한답시고 한마디 하자 쌩하고 짖는다. 견생도 격이 있다는 듯. 사람 손에서 놀다 보니 사람 흉내를 낸다.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 견공을 함부로 다루었다는 죄를 사람에게 물었다가 견공은 개망신에 주인은 나라 망신에 철장 신세가 되었다. 멍첨지도 염치가 있으면 고해성사라도 볼 일인데 저를 빌미로 사건 내막이 터졌으니 밥값은 치른 셈이다. 그 견공의 근황이 궁금하다. 혹,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초야로 떠났으려나. `의롭지 않은 부귀영화는 한낮 뜬구름이라.' 옛사람 말을 빌려 그럴싸하게 뱉어 놓고 말이다.

개 팔자 뒤웅박 팔자라 견 서방으로 전락한 우리 집 객 견도 한동안 방황하다 제 본분을 찾았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나 즐거움이 그 안에 있다고 하였다. 우리 견 서방이 상팔자이다. 저 흉흉한 바람 소리 저도 들었을 테니 오늘 밤은 이불을 덮고 숙면에 들었으리라.

나의 꿈자리도 한동안은 훗훗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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