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가에서 숭늉 찾기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7.09.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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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연목구어(緣木求魚)는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한다는 말이다. 물고기는 냇가나 강이나 바다 등으로 가야 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사리에 맞지 않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때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긴 맹자가 세상에 왕도정치(王道政治)를 널리 전하기 위해, 중원의 동쪽에 있는 제나라를 찾아갔다. 제나라는 서쪽의 진나라, 남쪽의 초나라와 더불어 여러 제후국 중에서도 대국으로 천하 통일 열망이 뜨거웠다. 그런데 제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선왕은, 군주가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어진 정치를 통해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는 왕도정치보다, 부국강병 및 무력을 수단으로 하는 패도정치(覇道政治)로써 천하를 제패하려는 야심가였다.

왕도정치를 강조하는 맹자와 패도정치를 중시하는 제나라의 선왕이 어느 날 문답을 나누게 된다. 맹자가 선왕에게 “폐하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신하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나라 제후들과 원수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천하는 무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왕이 “도덕도 중요하지만 천하를 얻으려면 전쟁도 필요하고, 무력도 당연히 중요하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그러자 맹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가 모두 무력으로 천하를 얻으려고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또다시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하겠다고 하시니 이는 마치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처럼 맹자와 제나라 선왕 사이에 오간 대화에서 유리된 말이 연목구어다. 어떠한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그에 상응하는 필요충분조건이 선결되지 않으면, 그 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로써, 어떤 일의 성공을 담보해 내기 위해선 시간과 공간을 점(占. 차지한다는 뜻)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선 나무 위가 아닌 냇가나 강이나 바다라는 공간을 점(占)해야 하며, 밤을 따기 위해선 냇가나 강이나 바다가 아닌 밤나무가 있는 산으로 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른 봄 아지랑이를 헤치며 온 산을 헤매고 돌아다녀 봐도 밤을 따고 줍는 일은 불가능하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높고 맑은 가을이 깊어가기 전에는 결코 밤 한 톨도 딸 수 없듯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선 그에 딱 들어맞는 시간과 공간을 점(占)해야 한다.

서두르거나 실기(失期)함 없이, 가장 알맞은 시간 및 최적의 장소에서 매사를 추진하고 진행해야만 성공적 삶을 담보해 낼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가르침이 바로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는 속담이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쌀을 씻은 뒤, 부엌의 솥에 그 쌀을 안치고, 아궁이에 불을 때는 등의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 숭늉이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다는 것은 성급한 마음에 시간도 점(占)하지 못한 채, 공간적으로도 어긋나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모든 일의 성공을 위해선 반드시 시간과 공간을 점(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사색의 계절 가을을 맞아 물고기를 구하기 위해 나무에 오르고,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은 아닌지, 이번 주말에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는 내면 여행을 떠남으로써, 느슨해진 2017년의 허리띠를 한 번 더 졸라매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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