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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손

生의 한가운데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 교사>l승인2017.09.15l수정2017.09.1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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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 교사>

물 폭탄이 떨어졌다. 30년 만에 오는 폭우라 했다. 계곡에서 사납게 울던 물소리가 넘쳐 마당을 뒤덮었다. 축대가 유실되고 흙과 돌이 도로를 막았다. 마을은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비의 창살에 갇혀 버렸다. 새벽부터 쏟아진 비는 주말 내내 발을 묶어 버렸다.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구멍 난 풍선처럼 쪼그리고 앉아 세상을 후려치는 성난 빗줄기를 망연히 바라봤다. 마치 외딴 집에 홀로 남은 깡마른 설치류처럼 눈만 빛내며 빗물 쏟아지는 허공을 갉아댔다. 저녁나절이 되자 비가 잠시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월요일은 출근해야 하기에 우리는 서둘러 괴산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서둘러 나섰다. 차를 그대로 둔 채로 강아지만 품에 안았다. 두 마리의 강아지를 각자 나누어 들었다. 큰 도로까지는 2킬로를 걸어야 했다. 평소 같으면 산책 삼아 걸을 만한, 풀꽃이 넘실대는 상쾌하고 정겨운 2킬로다. 그러나 폭우가 훑고 간 길은, 난감하고 험난한 가시밭길이 따로 없었다. 마을 여기저기 계곡에서 쓸린 돌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쌓인 돌 더미 위를 기우뚱거리며 걷고 또 걸었다. 가다 보니 다시 비가 쏟아졌다. 길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물이 종아리까지 넘실거렸다. 장화를 신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물이 장화 속으로 들어와 낄낄거렸다.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다리에 온 힘을 주고, 한 손으로는 남편의 팔을 잡고 강아지를 안은 다른 손에 힘을 주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푹푹 빠지는 흙더미도 나왔다. 어떤 구간에서는 장화가 진득한 흙에 들어가 빠지지 않았다. 간신히 발을 빼고 또 걸었다. 한 시간여를 걸어서 도착한 큰길에는 청주에서 온 아들이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청주는 어떠냐고 묻자 청주도 난리지만 큰길은 그나마 괜찮다고 했다. 오는 길에 도로에 여기저기 돌이 흘러서 위험했노라고 토로한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했다.

청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괴산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후영리 언니와 도원리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영리는 방갈로가 다 떠내려가고 집안에 물이 차고 농작물도 모조리 물에 휩쓸렸다고 했다. 도원리는 지하가 폭삭 잠기고 전기가 끊기고 일 층도 물이 반 이상 잠겼다고 했다. 당장 밥은 마을 회관에서 해결하는데 옷이 없다고 울먹였다. 내 마음도 함께 울컥였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직원들에게 소통 메신저를 날렸다. 그러자 교감 선생님을 비롯하여 방과 후 선생님, 행정실 주무관님까지 안 입는 옷을 갖다 주었다. 모임에도 공지를 했다. 00기자 는 동생에게 주려고 모아놓았던 옷이라며 옷을 내 주었다. 고마웠다. 퇴근 후 괴산으로 향했다. 후영리 언니에게 옷을 전했다. 언니는 내 손을 꼭 쥐며 동네 사람들과 나눠 입겠다고 했다

살면서 예기치 않은 어둠 속에 갇혀 헤맬 때가 있다. 어둡고 험한 길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전등을 비춰주고 손을 뻗어 꺼내 줄 누군가가 곁에 있기에, 이 세상에 희망이 있는 것이리라. 고마운 이웃들을 보며 판도라가 남겨둔 희망의 씨를 보았다. 그 희망을 새롭게 싹 틔워야 할 때이다. 이번 폭우를 통해, 심장이 몸 밖으로 떨어져 나와 까맣게 타들어 가는 듯한 아픔도 있었지만, 따듯한 사람들의 온기를 가득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따듯한 손이 되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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