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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로 이루어진 구조물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l승인2017.09.15l수정2017.09.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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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유발 하라리는 그의 역작 `사피엔스'에서 신체적으로 열등한 우리 인류가 모든 생명체들을 제압하고 지구의 주인으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믿는 능력에 있다고 주장한다.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동인데, 면대면 상호작용을 통해서 협동할 수 있는 인원은 150명을 넘기 어렵다고 한다. 동물들이 무리짓는 것과 협동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협동이란 어떤 명령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동물들도 협동하지만 그 규모는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인간은 수천수만은 물론 수십억이 함께 협동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허구를 믿는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정의를 믿고, 사랑을 믿고, 신의 존재를 믿는다. 휴지 쪼가리에 불과한 돈의 가치를 믿는다. 인류 문명은 바로 이 허구의 믿음 위에 서 있는 구조물이다. 하지만 이 허구 위에 서 있는 이 문명은 결코 허구일 수는 없다. 허구(虛構)로 만들어진 진짜 구조물(實構),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면 될까?

일면 모순같이 보이는 이런 문제가 물질세계에도 존재한다. 물질이라는 존재야말로 존재 중의 존재, 가장 확실한 존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확실한 존재를 자꾸 파고들어가 보면 점점 모호해지고 결국 비물질적인 궁극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여기 이 돌멩이 하나를 잡으면 까칠까칠한 돌의 표면이 느껴진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과학자들이 물질을 탐구한 결과에 의하면 내 손의 피부는 결코 돌의 표면과 `접촉'한 일이 없다. 돌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내 손가락의 피부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중앙에 아주 작은 원자핵이 있고 핵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주위에 전자가 분포해 있다. 원자와 원자가 접근하면 이 전자들의 반발력에 의해서 원자들은 서로 접촉을 할 수 없다. 내 손의 피부가 돌의 표면에 접근할 때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내 손의 원자가 돌의 원자는 절대로 `접촉'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 손에 짜릿짜릿하게 느껴지는 이 돌의 촉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가짜다! 가짜라고? 그렇다. 가짜다. 돌의 이 까칠까칠한 촉감은 돌의 원자와 손의 원자에 있는 전자들의 반발력이 만들어낸 허구다. 까칠까칠하다는 촉감도 사실은 이 전자들의 반발력이 손의 신경을 타고 뇌에 가서 뇌 신경세포의 반응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짜이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흘렀다. 물질의 궁극을 파고들어가면 결국 비물질적인 근원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현대 물리학자들이 밝혀낸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 쿼크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 것인가? 쿼크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렇지만 그것을 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쿼크는 물질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그것을 에테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기(氣)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렇게 확실한 존재인 물질조차도 모호하기 그지없는 허구 위에 서 있는 구조물이 아닐 수 없다.

방향을 바꾸어 대한민국이라는 허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이 무엇인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있고, 한반도라는 땅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확실히 존재하는 실체다. 땅도 확실히 존재하는 실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허구다. 성경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되어 있다. 이 `말씀'이야 말로 실체와는 거리가 먼 진짜 허구다. 하지만 이 허구가 아니었다면 인류의 문명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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