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권진원<진천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 승인 2017.09.14 18:0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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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 권진원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기사를 보던 중 10여년 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아파트에 살고 있던 저는 단지 내를 지나다 놀이터에서 욕설이 오가며 소리치는 몇몇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보니 10대 후반 여학생들이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의 주위를 둘러 있고 한 여학생이 그 남학생의 얼굴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대낮인데다 놀이터여서 어린 아이들이 뛰어놀고 옆에는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유모차를 끌고 아기들을 재우는 모습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남학생의 얼굴은 멍이 들어 있었고 코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른으로서 충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웅성거리는 아이들을 비집고 들어섰습니다. “애들아! 그만 해라. 여기는 사람들도 많고 아이들과 어르신들도 있는데 뭐 하는 거니. 이제 그만 집에 돌아들 가라.” 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학생이 자신의 안경 너머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저씨가 뭔데 그러세요! 아저씨 저 애랑 무슨 관계세요? 아니면 괜히 끼지 마시고 가시던 길 그냥 조용히 가세요.” 이러는 것이 아닙니까. 속으로는 황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제 머리에선 `엄하고 단호하게 화를 내야 하는가? 아니면 다시 한 번 조용히 타일러야 하나? 아님 그냥 모른 척 지나칠까? 경찰에 신고할까?'별별 생각들이 다 들었습니다.

성급하게 화를 내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듯하여 한 여학생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때리는 여학생은 자기 남동생이 저 남학생에게 맞아서 복수를 해주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응당해야 할 일을 하는 저 여학생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기 내가 갑자기 끼어들어 미안한데. 이 이야기는 하고 가던 길 갈게. 누나 마음이 몹시 아프겠구나! 동생이 저 남학생에게 맞았으니 말이야. 가서 혼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의 결과가 어떨지 생각해보았는지 모르겠다. 난 여기서 그만 했으면 해.” 한 학생이 이야기를 듣다가 “아니 왜 그래야 돼요, 그냥 맞은 만큼 되돌려주면 되는 것을…”, “그렇게 한다면야 내가 어쩔 수 없는데 그러면 나는 그 때린 사람들을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어. 너희에겐 그게 정당한 폭행일지 모르지만 경찰은 다르게 생각할걸. 아마도 너희가 경찰 아저씨들 만나면 이 일이 학교와 부모님까지 알려질지도 몰라. 그래도 화가 나서 해야 되겠다면 어쩔 수 없지 뭐. 난 너희 행동을 보고 판단하겠어. 경찰에 전화를 걸지에 관해.”

아이들 표정이 하나둘씩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 건 아니었는데…'라는 생각들을 했는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씩씩거리면서 “이쯤 했으면 맞은 건 돌려 줄 만큼 되었는데 그만 가자”이러면서 발길을 돌리는 것입니다.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의 폭력 수위는 심해지고 정도를 모르는 잔혹함과 무자비함은 흡사 조폭들을 보는 듯하여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학생들에게 지금의 소년법은 솜방망이 처벌이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법이니 폐기나 개정이 필요하다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들에게만 처벌을 강조할 것만이 아니라 이런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웠는지에 관해서도 진지하게 성찰해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그 사회와 어른들의 투영입니다. 그 모습을 그대로 배워 답습하고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러니 그 아이들에게만 모든 짐을 지우는 일을 해서는 어른답지 않습니다. 가해학생이 법의 처벌을 정당하게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른들이 더 좋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는 일 또한 간과해서는 알 될 일입니다. 더불어 피해학생이 상처 없이 살아가도록 사회가 보듬어주고 관심을 보여주는 일도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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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017-09-14 22:13:42
세상이 변했으니, 법도 변해야 하지 않겠는가?
소년법의 기본 정의는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약자라는 것이다.

정말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약자인가?

우린 강한 가해자를 위해, 약한 피해자에게 사회적 폭력을, 법적인 폭력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홍익인간 2017-09-14 22:10:44
1988년쯤에는 학교폭력이 드물었다.왕따 라는 단어도 사회생활 하면서 들었다. 그때는 밖에서 심하게 놀던(?) 친구들도, 같은반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학년별로 군기가 엄했지만, 내가 폭력에 노출되었다는 생각은 한적이 없다. 오히려 노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얌전했다. 교실에서 까불고 노는애들은 순진한(?) 애들이었다. 그런데 2017년... 이제는 더이상 반드시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약자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