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오 규 원
대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고 담장을 넘어
현관 앞까지 가을이 왔다
대문 옆의 황매화를 지나
비비추를 지나 돌단풍을 지나
거실 앞 타일 바닥 위까지 가을이 왔다
우리 집 강아지의 오른쪽 귀와
왼쪽 귀 사이로 왔다
창 앞까지 왔다
매미 소리와 매미 소리 사이로
돌과 돌 사이로 왔다
우편함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왔다
친구의 엽서 속에 들어 있다가
내 손바닥 위에까지 가을이 왔다
#가늘게 무채를 썰듯 시간을 분절한다면 가을도 분명 덜컥, 오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의 흐름처럼 천천히, 그것도 담장을 넘어 도둑처럼 찾아올 것입니다. 마당의 나무와 꽃과 우편함에 잠시 머물렀다가 방안의 그것들을 지나고야 나에게로 오는 것입니다. 이를 좀 더 크게 열면 밤과 낮의 하루요, 사계절이요, 우주요, 삶의 순환이겠지요. 이 가을, 잘 모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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