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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놓고 말하기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l승인2017.09.14l수정2017.09.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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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물건을 가운데 놓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말 자체를 가운데 놓고 말하자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사람마다 말의 층 차가 다르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언제 점심 먹자.”

나: 그와 점심약속을 했다. 기다리자. 언제라고 확정한 것이 아니기에 한참을 기다려보자. 그래도 소식이 없으면 그 약속을 왜 안 지키냐고 물어보자. 아니면, 나라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연락하자. 나도 응낙했기에 약속의 절반은 내 책임이다.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나도 나쁜 사람이 된다. 나는 함께 밥을 먹자는 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윤리적 책무가 있다.

남: 언제 점심 먹자는 것은 인사의 용법 가운데 하나다. 인사치레라고 나쁘게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정감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사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좋은 사이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사이가 나쁜 사람에게 밥을 먹자는 인사를 하지 않지 않는가. 그러니까 밥 먹자는 것은 식사가 아닌 우정의 정도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럴 때 `남'과 `나'는 엄청난 괴리를 갖고 그 말을 해석했다. 어쩌면 좋은가?

우리말에서 `생각 좀 해보자'는 말은 긍정일까, 부정일까? 그것은 여러 맥락에 따라 다르겠지만, 표현을 직설적으로 하는 문화와 우회적으로 하는 문화에 따라 그 해석은 큰 차이를 갖는다. 게다가, 본인에게 치명적인 일이라면 더욱 자기식으로 해석한다.

외국에서의 일이다. 한국인 유학생이 교수를 찾아가서 이번에 그 과목이 낙제하면 퇴학을 당한다고 호소했다. 그때 교수는 `생각 좀 해보자'고 대답했다.

유학생: 가능성이 열렸어. 잘해준다고 했어. 다행이야.

교수: 참네, 어려운 부탁을 하는구먼. 그렇다고 면전에서 안 된다고 하면 민망할 뿐이지.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어.

유학생: 성적을 올려줄 거야.

교수: 성적 올려주는 것이 애들 장난인가.

이렇게 그 둘은 다른 생각을 했다. 결국 궁지에 몰린 것은 유학생이었다.

그러면서 유학생은 그 교수의 `생각 좀 해보자'는 말을 붙잡고 늘어졌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한편으로 원망했다. 그러나 교수의 입장은 달랐다. `우리'(또는 그 교수)의 어휘 속에서 `생각 좀 해보자'는 부정에 기운다. `어렵다'는 표현이다.

공연히 중간에 낀 나는 그 표현의 용법이 나라마다 다름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말의 껍데기는 같지만, 말의 알맹이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우리말의 `생각 좀 해보자'는 긍정의 심정을 담지만, 그 나라 말에서 `생각 좀 해보자'는 거절의 의미임을 말해야 했다. 결국 내가 제안한 것은 성적을 고쳐달라고 부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성적을 고쳐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라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교수가 원하는 방식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말할 때 그것이 어떤 말이든 제발 나와 남의 가운데쯤 놓고 이야기를 하자. `밥 먹자'는 말부터 `생각해 보자'는 말까지, `잘 될 거야'라는 말부터 `나를 믿어'라는 말까지도. 아니면 `필승', `단결'같은 구호에서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이념까지도.

나는 남들이 `충성'이라 외칠 때 늘 `반성'이라고 외쳤다.

오늘도 반성!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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