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현(絃)
사막의 현(絃)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09.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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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몽골의 고비사막에 마두금(馬頭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애절하면서도 은은한 초원의 바람 소리처럼 들린다. 이 연주에 낙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출산 후 고통이 너무 심하여 새끼를 거부하는 어미다. 젖을 물려는 새끼를 발길질하며 피하는 낙타. 어미의 차디찬 외면으로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모습에 지켜보는 이들도 안타깝다. 그런 어미를 달래주고자 들려주는 곡이다.

사고로 어미가 죽은 또 다른 새끼가 울고 있다. 이렇게 오래도록 굶주려 내버려두면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제 새끼가 아니면 절대 젖을 물리지 않는 낙타다. 이 연주를 들은 낙타가 눈물을 보이고 거짓말처럼 새끼를 품는다. 또한 모성이 대단한 철옹성 같던 어미의 본능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기도 한다. 자기 어미의 젖인 양 매달려 빨아대는 남의 새끼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몽골인들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세계테마기행으로 방영된 이 장면은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낙타를 울리는 마두금(馬頭琴)은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이 있는 악기다. 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몽골의 민속악기로 몸통 위쪽 끝에 말머리장식이 있는 두 줄의 현악기다. 구슬프고 부드러워 우리의 해금과 닮아있다. 왼손으로 현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활을 당겨 말총을 현에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

낙타는 수줍음을 많이 타고 민감한 동물이다. 낙타가 하는 일은 사막을 건너는 일이다. 모랫바람을 헤치고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이겨내며 짐을 실어 나르고 사람을 태워 다니는 삶이다. 사막에서의 악조건을 참아내며 거기에 적응하는 낙타는 얼마나 지혜로운가. 물을 몸에 비축하고 등에 있는 혹에 지방을 축척해 놓는다. 좁고 길게 찢어진 콧구멍과 긴 눈꺼풀과 속눈썹은 모랫바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낙타를 보면서 나도 어느 사막에서 헤매는 착각에 빠진다. 인생이 사막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목이 말라 늘 갈증이 생기고 더위 같은 고통으로부터 힘들게 견뎌야 하는 사막일 때가 많다. 또 다른 사막을 가고 있는 나는 어떤가. 한꺼번에 물을 다 마셔버리고 금방 목이 말라 어쩔 줄 모른다. 그리고는 오아시스가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황량한 모래 언덕의 망망대해에서 신기루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다.

나는 등에 나 있는 낙타의 혹이 왠지 안쓰럽다. 짐을 하도 지게 해서 생긴 굳은살 같기도 하고 아파서 불어난 혹처럼 보여서 측은하다. 어쩌면 나의 혹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혼자서 사막을 걷는 일이 힘들어서 부르튼 그 혹이 아프고 욱신거릴수록 자꾸만 낙타가 가여워지는 것이다.

사막은 가보지 않은 나에겐 미지의 세계다. 그곳은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모래의 결이 만들어진다. 앞을 모르는 길이다. 내가 향하는 대로 무늬가 그려지는 인생 또한 사막과 같다. 낙타가 사막을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건너가듯이 나 또한 거친 사막의 모랫바람을 잘 이겨내야 하리라.

바로 발자국을 지워버려 앞에 지나간 사람도, 뒤에 따라오는 사람도 없는 아득한 벌판을 걸어간다. 생떽쥐베리는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삭막한 길 위에서 지칠 때마다 마두금(馬頭琴) 연주를 들려줄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람이 나에게도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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