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매미
가을 매미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9.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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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소리 없이 왔다가 소리 없이 가는 것이 계절이지만, 유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찾아오는 계절이 있으니 가을이 바로 그것이다.

여름이 절정을 지나는 순간부터 매미는 줄기차게 울어대기 시작해 입추, 처서, 백로 등 가을 절기들을 차례로 지나면서 그 울음의 기세는 점점 더 강해진다.

여름을 내모는 의미인지 가을을 재촉하는 의미인지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아무튼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목청을 돋우어 매미는 열심히도 울어댄다.

조선(朝鮮)의 시인 강정일당(姜靜一堂)에게 매미 울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청추선(聽秋蟬 가을매미 소리)

萬木迎秋氣(만목영추기) 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
蟬聲亂夕陽(선성난석양) 석양에 어지러운 매미 소리들
沈吟感物性(침음감물성) 제철이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林下獨彷徨(임하독방황) 쓸쓸한 숲 속을 혼자 헤맸네

가을은 우선 빛깔로 나타난다. 파랗다 못해 검기까지 했던 한여름의 나뭇잎들은 가을로 접어들면 하루가 다르게 누런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나무를 보면 여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드는데, 이것을 시인은 추기(秋氣)라고 부르고 있다.

가을이 오는 빛깔이 느리고 정적인 데 비하여 가을이 오는 소리는 무척 요란하다. 아니 요란하기보다는 시끄럽다. 가을이 사색의 계절임을 감안하면, 그 오는 소리가 시끄러운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가을이 오는 것을 절규하는 듯한 매미 소리는 한낮을 지나 저녁 무렵이 되면 그 기세가 절정에 이른다. 차분하고 우아한 석양의 배경 음악치고는 너무 시끄럽고 경박하다.

하루를 마감하는 석양의 모습에서 삶을 관조하려던 사람에게 매미 소리는 그야말로 얄미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은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짜증이 나지 않고 도리어 그 소리에 자극을 받아, 사물의 천성을 예민하게 느끼게 되어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무언가 무거운 느낌이 있지만, 입으로 읊으려니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인은 초가을 저녁 숲을 홀로 방황하게 된 것이다.

매미가 요란하게 울지 않아도 가을은 오고 말 것이다. 그러나 가을이 스타임을 감안하면,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열렬히 환영하는 광팬이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의미에서 매미는 시끄럽지만 결코 얄미운 존재는 아니다. 무대에 오르는 가을의 힘을 돋우어 더욱 알찬 공연을 할 수 있게 하니 말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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