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가 그립다
동주가 그립다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7.09.1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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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박윤미

지난 8월 중순 짧지만 아주 특별한 휴가를 보냈다. 10시도 훌쩍 넘어 자정으로 향하는 시각, 우리 가족은 이름도 고운 장미산으로 갔다. 정상에서도 더 높은 전망대로 올라가니 주위 모든 것이 시선 아래로 내려가고 무한히 커다랗고 불투명한 반구가 나를 덮었다. 옹기종기 앉거나 누워서 도란거리는 사람들 틈에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서로 낯선 사람들이 함께, 각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같은 하늘을 보았다. 몽글몽글 하얀 순두부 같은 구름 사이로 제법 둥근 달이 어렴풋했다.

곧 사람들의 짧은 함성이 들렸다.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있는 날이다. 난 아직도 산만해서 하늘 여기저기를 헤매고 있었다. 한낮에 달궈졌던 시멘트 바닥에 남아있던 온기가 서서히 등으로 전해지고, 여름밤 시원한 산바람이 내 온몸을 간질이며 지나갔다. 나른해지고 차분해져서 동공이 넓게 풀렸다.

견우별과 직녀별이 만드는 여름철의 대 삼각형과 카시오페이아와 북두칠성 같은 별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좀 더 멀리 우주도 잠시 상상했다. 하늘은 내내 구름이 가득했지만, 항상 어느 한 쪽은 맑게 열려 있어, 움직이는 창 사이로 북극성이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원래도 그다지 밝지 않은 별인데 오늘은 더 희미했다. 불시에 나타나 별들 사이를 가로질러 짧거나 긴 꼬리를 긋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빛줄기, 별똥별이 떨어지고 잠시 후 또 떨어졌다. 이런 순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작은아이가 시작했다. 이 시 제목이 뭐였지? 별 헤는 밤이었나? 서시 아닌가? 큰아이와 티격태격하며 서로 고쳐 외고 이어 외는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마냥 듣고 있었다. 며칠 전에 지금처럼 함께 누워 영화 `동주'를 봤었다. 시집(詩集) 같은 영화였다. 흑백의 영상과 목소리를 종이 위에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잔잔히 자꾸자꾸 흘러 가버리고 말았다.

그중에 특히 계속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동주는 이런 시대에 태어나 시를 쓰고 시인이 되기를 바란 것이 부끄럽다는 말과 함께, 거울에 비추어도 우물에 비치어도 하늘을 올려다봐도 괴로운 마음을 시로 남겼다. 요즘 대학 입학 상담으로 정신이 없다. 12년의 긴 학령기를 끝내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감격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드디어 의자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얻는 대신 야생의 정글 같은 사회로 나가는 것이 짠하기도 하다. 아이들을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동주의 시대와 비교할 차원은 아니지만, `이런 시대에'말이다.

취업이 어렵고 미래가 불투명한 이런 시대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외침은 얼마나 무모해 보이는가? 오랫동안 연극배우, 영상 편집, 과학 연구원을 꿈꾸던 아이들이 대학 진학 선택의 갈림길에서 취업과 임금 통계에 집중한다. 세상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결국 대부분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다행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어느 시대든 `이런 시대'가 아닌 시대가 있을까? 작은딸은 꿈이 또 바뀌어서 며칠 전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녀석은 어떤 시대를 만나고 어떤 삶을 선택하며 살게 될까?

하늘에 구름도 더 많아지고 사람들도 모두 떠났다. 우리는 별똥별 딱 하나만 더 보고 가자며 잠시 더 누워 있었다. 나는 바로 이 순간 이상으로 더 바랄 것이 없었다. 하늘이 아늑하게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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