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많아야 한다
장애인이 많아야 한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9.10 1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한국에는 장애인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연전에 서울을 찾은 한 외국인 장애인단체 임원이 했던 말이다. 천만의 말씀이었다. 거리에서 장애인이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장애인들이 불편없이 거리를 다니는 제 나라 생각만 했던 것이다. 그의 오해는 장애인들이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우리 현실을 풍자한 서글픈 유머가 되고 말았다.

국내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6%, 3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거동에 큰 불편이 없는 경증 장애인이 포함됐다 하더라도 적지않은 수치이다. 이들이 거리에서 보이지않는 것은 현재 도로 환경에서는 `홀로 보행'이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한때 정부는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보행 환경을 완벽하게 조성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었다. 점자블럭과 리프트가 도로와 공공시설 곳곳에 설치됐다. 횡단보도의 턱을 낮춰 경사로를 만드는 공사도 이어졌다. 법으로 관공서와 공중이용시설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 했다. 그러나 이 호들갑의 결과는 초라하다. 점자블럭은 엉터리 설계와 졸속 시공으로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툭 하면 전신주 등 장애물에 막히고 파손된 채 방치된다. 점자블럭에 개구리 주차를 허용한 지자체도 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사용하지 못하는 관공서와 지하철 리프트는 녹이 슨 채 방치되고 있다.

공중이용시설의 장애인 편의시설도 일정 규모 이상으로 한정하다 보니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슈퍼마켓과 음식점은 바닥면적이 300㎡ 이상, 미용실은 500㎡ 이상이어야 한다. 휠체어를 탄 채 집 가까이 있는 동네슈퍼나 미용실 등은 이용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객실이 30실 미만인 숙박시설 중 장애인용 객실을 갖춘 곳은 전국에서 한 곳도 없다. 노래방과 당구장 등은 아예 의무 설치대상에서 빠져있다. 법정 시설들도 태반이 실용성이 떨어지거나 관리가 부실해 장애인들이 이용에 불편을 겪는다. 집밖을 나와도 이동이 불가능하고, 이동이 가능하더라도 불편없이 출입할 곳이 없는 장애인의 현실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엊그제 신문에 보도된 한 장의 사진은 장애인의 현실은 물론 미래까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서울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장애인 특수학교 설치를 다루는 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부모 20여 명이 무릎을 꿇고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자식들이 학교라도 다닐 수 있게 해달라”는 이들의 읍소는 선거공약대로 국립 한방병원을 지으라고 반발하는 예정지 인근 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장애 인구의 절반 이상이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 소유자다. 전국 장애 학생 가운데 9만명 정도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현재 교육시설에 수용한 인원은 2만600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장애인 저학력의 원인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장애인에 가해지는 심각한 교육 차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에 대한 여전한 편견과 혐오감도 우리 사회가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부실한 정책으로 장애인을 눈에 띄지않는 존재로 만들어 그들과 비장애인과의 이질감을 키워온 정부에 1차적 책임을 묻는다.

얼마 전 방송에 장애인을 고용한 일본의 한 커피숍이 소개됐다. 이 점포는 계산에 서투른 장애인들을 위해 모든 메뉴의 가격을 단일화 했다. 적지않은 종류의 커피와 음료에 같은 가격을 매기기 위해 단가나 품질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주인은 적잖은 고충을 겪었을 것이다. 이 커피숍의 매출은 장애인 고용 후에도 줄지않았다. 고객들은 업주의 따뜻한 마음과 장애인들의 의지에 적극 호응했다. 그 바탕에는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이동권을 적극 보장해 준 일본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

장애인 정책은 점자길을 만들고 리프트를 설치하고 장애인 전용주차장을 만드는 토목공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장애물을 없애고 지속적으로 보완해 점자블럭에 장애인들의 통행이 빈번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텅 비어있거나 무법자들의 차지가 되기 일쑤인 장애인 주차시설이 붐비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곳들이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흉내만 내는 위선과 기만의 공간이 되지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자식 낳은 죄밖에 없는 사람들이 무릎끓고 눈물 흘리는 잔혹한 광경이 더 이상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 그 첫걸음이 장애인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이웃으로 만드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