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
자연스러움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09.0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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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가만히 두면 가만히 있는가? 여기 돌멩이가 하나 있다. 가만히 두면 가만히 있는다. 건들지만 않으면 한 시간 뒤에도 그 자리에 있고 내일도 모래도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가만히 있던 아이들은, 선생님이 나가기만 하면 왁자지껄, 이리저리 야단법석이 된다. 어느 현상이 더 자연스러운 것인가? 가만히 두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자유분방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어느 것이 더 `자연스러운' 모습일까? 혹자는 무생물과 생물의 자연스러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정말 그럴까?

이 우주에 입자 한 개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입자는 그 자리에 영원히 그대로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뉴턴의 대답은 “그렇다”이고, 현대 양자물리학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입자 한 개가 있다면 그 입자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할 수 없고 우주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입자의 본 모습이 아니다. 여기 돌멩이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은 어머어마하게 많은 입자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지, 입자 한 개가 있다면 그렇게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운동은 생명의 특성이고 정지는 무생물의 특성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원자와 같은 작은 세계에 들어가면 완전히 달라진다. 이 방에는 공기들로 가득 차 있다. 공기는 산소, 질소, 이산화탄소와 같은 분자들의 집합이다. 이 분자들이 운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공기는 방바닥에만 쌓이고 천정에는 공기가 존재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공기 분자들은 부단히 운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 방의 구석구석을 다 채우고 있는 것이다.

정지해 있는 원자나 분자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존재할 수 없는 매우 이상한 상태이다. 정지보다는 운동이 자연스러운 상태이고, 일정한 운동보다는 자유분방한 운동이 더 자연스러운 상태이고, 자유분방한 운동보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운동이 더더욱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자연은 질서정연한 체제라는 것이 오래된 믿음이다. 과학은 이 믿음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인간은 믿을 수 없지만 자연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오래된 믿음이다. 자연은 예측이 가능하고, 그래서 통제가 가능한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이 질서를 발견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고 그 노력의 결과로서 지금과 같은 고도의 과학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도달한 결론은 엉뚱하게도 불확정성원리와 같이 자연이 그렇게 질서정연한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혼란의 극치,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더 이상 혼란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것이 자연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현대 과학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 혼란스러움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 경험하는 이 질서정연함이다. 혼란스러움에서 출발한 자연이 왜 이렇게 질서정연하고, 예측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것인지, 그것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유분방한 입자들이 모여서 된 돌멩이 하나가 어떻게 자유를 잃어버렸는지 그것이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은 이해가 되고, 예측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자연의 본성은 그렇지 않다. 무생물인 자연이 그러할 진데 생물인 인간으로 이루어진 이 사회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고,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예측과 통제라는 아버지적 자세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같이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는 어머니적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것이 진정한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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