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끗
삐끗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 교사>
  • 승인 2017.09.0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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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삐끗했다. 이 주일째 절름거리며 다닌다. 금준미를 우려서 쟁반에 받쳐 들고 테라스로 나오다 느닷없이 발을 헛디뎠다. 찻잔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참을 그대로 망연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찻잔이 박살 나서 여기저기 튀고 찻잔 받침이 빙그르르 뒹굴었다. 눈과 귀를 파고들던 뾰족한 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나는 일어서려 발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발을 딛는 순간,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발을 도끼로 내리치는 것 같은 통증이 일며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옆에 있는 의자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 손을 짚은 팔에 힘을 주어 간신을 몸을 끌어올렸다.

하루를 꼼짝없이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책을 보고, 마당에 날아다니는 딱새를 보고, 칸나 빛으로 물드는 석양을 보며. 이틀째 되는 날부터 절름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어떤 병이든 삼일이 되면 낫는다는 내 터무니없는 믿음은 또 발동을 했다. 근거 없는 신념을 갖고 절룩이며 삼일을 다녔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삼일이 지나도록 발목은 차도가 없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한의원을 찾았다. 인대가 늘어났다고 했다. 의사는 침을 놓고 물리치료를 하고 약을 지어 주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뒤뚱거리며 한의원을 들락거려도 차도가 없었다. 의사에게 왜 이리 차도가 없느냐고 묻자 그리 쉽게 낫는 부위가 아니란다. 내가 더는 안 올 것처럼 보였는지,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삘 수 있는 부위라고 으름장도 놓았다.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침을 놓는 대로 눈만 찔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의사는 날카로운 침을 발목 주변으로 빼곡하게 박았다. 그리고는 부황을 떴다. 부황기를 올려놓더니 권총식 펌프로 발목 근처 여기저기 부황기를 흡착시켰다. 이내 투명한 부황기 안에 죽은 피가 맨드라미처럼 가득 피어올랐다.

부황기 안으로 가득 차오르는 검붉은 피를 보며, 내 안에 가득 들어앉은 삐걱거리는 생각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것들을 피를 빼내듯 하나하나 빼 본다. 첫 번째 부황기에 차오르는 피를 보며, 고추씨처럼 가득했던 이기적인 까만 마음을 빼 본다. 그리고 두 번째 부황기에 차오르는 피를 보며, 더 갖고자 치어떼처럼 바글거리던 욕심도 빼 본다. 세 번째 부황기를 보며 들깨처럼 까맣게 익어가던 단단해진 미움도 빼 본다. 그득하게 차오르는 부황기를 보며, 삐걱대는 마음이 가득 들어찬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간호사의 낭랑한 음성이 귓전을 때린다.

“됐습니다. 조심해서 내려오시구요!”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조심조심 발을 디딘다. 아까보다 발목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

온찜질을 꼭 해주라는 간호사의 말에 “냉찜질 아닌가요?”라고 묻자 처음 다쳤을 때는 냉찜질이지만 시일이 오래 지나면 온 찜질을 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겠노라 대답을 하고 한의원 문을 나선다.

제법 싸늘해진 바람이 내게 몰려든다. 절름거리는 걸음걸이가 휘청이는 내 삶 같다. 배려하며 살라고, 욕심 없이 살라고, 용서하며 살라고, 그래서 절름거리지 말고 바르게 걸으라고. 초가을 찬 바람이 휙~ 뺨을 긁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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