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해서
쉽게 말해서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7.09.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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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빈정 상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대중매체이든 일상의 경우이든 누가 무슨 말을 하다가 `쉽게 말해서'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는 때입니다.

살다 보니 그런 말을 듣게 되는 때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무슨 억하심정(抑何心情)으로 그런 말을 쓰는지는 알 수 없기에, 누가 언제부터 그 말을 쓰기 시작했는지 유래를 알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답니다.

굳이 그 말이 필요한 상황이 아님에도 그런 말을 듣게 돼 참다못해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면, 속으로 이런 말을 하는 제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괜찮으니까 쉽게 말하지 마세요. 말을 알아듣지 못할까 염려하지 마시고, 원래 하고 싶었던 대로 말씀하세요. 아니, 아예 어렵게 말해보세요. 어렵게 말하면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쉽게 말한다 해놓고는 대부분이 이전의 말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나름 단단히 마음을 먹고 어렵게 드리는 말씀이니, 너무 같잖게 여기지 마시길 바랄게요.

어디선가 장군죽비(將軍竹?)를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으면 합니다. 사람의 말하는 자세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니까요.

물론 별다른 뜻 없이 종래의 습관처럼 `쉽게 말해서'라는 말을 쓸 수도 있겠지요. 그런 분들은 대뜸 항변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달리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른바 배웠다고 하는 분들이 얘기하는 도중에 상대방의 난감해하는 표정을 살피다가, 지레짐작으로 판단해 `쉽게 말해서'라고 하면서 관계의 리듬을 깨뜨릴 때가 있더군요.(상대방이 “쉽게 말하자면 어떤 거죠?” 라는 식으로 먼저 요청하는 경우는 예외로 두어야겠지만 말이죠.)

제가 생각하는 대안을 꺼내놓고 싶습니다.

`바꿔 말해서'나 `다르게 말해서'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라는 말을 대신해 말이죠.

제가 어느 한 가지 표현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불편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황현산 평론가의 말을 섣불리 지나치고 싶진 않군요.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늠될 것만 같다.”

제가 쓰는 현재의 모든 말들이 두텁고 두텁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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