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방
비움의 방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09.0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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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작은 몸 하나 뉘면 족한 방에 많은 것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주인인지 내가 주인인지 헷갈려 하면서도 여태 그러고 산다. 욕심을 껴안고 사는 동안은 놓지 못할 것들이다.

케케묵은 감정들이 들어찬 내 마음 방을 보는 듯하다. 내 마음 방 역시 북새통에 난삽하기 그지없다.

미처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이 들고 일어나는 날에는 부글부글 용암이 끓어 넘친다.

방안 목석들이 못 견디게 거추장스러워진다.

숨쉬기가 힘들어지면 구석구석 자리한 물건들에 달라붙어 뭉그적거리기 시작한다.

장롱은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아서 아주 특별한양 당당하다. 한 몸 누일 침대는 너 댓 명쯤의 잠자리를 빼앗고도 교만하다. 화장대 거울 앞에 앉으니 백설 공주에 나오는 왕비의 거울보다 더 솔직하게 나를 말한다. 애먼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무거운 장롱은 내다 버리고 싶은데 버거워서 감당을 못한다.

그 자리가 비워지면 눌린 가슴이 용수철 튀듯 가벼워질 것 같은데 요지부동이다. 잡다한 것들을 비워낸다. 비워진 방안에 앉아서 케모마일 한 잔을 마시며 여백의 미를 즐긴다.

사실 뜬금없이 살림살이가 눈에 거슬리는 이유는 자리를 이탈한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산란한 날 나만의 비워 내기 방법이다.

땀으로 몸이 흥건히 젖고 팔에서 경련이 나도록 마음의 짐을 부리고 나면 살 것 같다.

수행자의 방을 들여다보면 작은 탁자와 차를 걸러내는 다기가 놓여 있다.

한 벌의 옷이면 족하다고 걸어놓은 모습이 정갈하다. 가슴에는 맑은 향 차로 가득 채워진 듯하다. 마주 보고 앉으면 내게도 채워질 것 같아 한 뼘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진다. 비워진 공간에 향기가 가득하다.

수시로 난공불락의 요새로 변하는 내 마음을 언제쯤엔 정복할 수 있을까. 수없이 일어나는 불손한 감정들에 언제쯤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문득 내 안에서도 차 향 풍기는 날이면 항상 그리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비움의 방을 만들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모방하면서 성장해 가지 않는가.

욕심으로 가득 찬 방 하나를 비워야겠다.

준비하는 마음으로 도배하되 고운 한지에 풀을 먹여 너 댓 겹을 발라야 마음이 새어나가지 않고 자중하여 앉을 수 있겠다. 네 귀가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 생긴 제 모양대로 탁자도 하나 짜야겠다.

차 향이 궁금해지는 날, 한 잔의 차를 올려놓고 맑은 향내를 맡고 싶다.

마음 내켜서 글 한 편 써보고 싶으면 연필 한 자루와 노트 한 권이면 족하다.

어떤 것도 넘보지 못하도록 비움의 방이라 써 붙여 놓아야겠다. 누구든 들어서면 주인이 되고 마음을 씻고 가는 그런 방이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마음이 흔들리는 날엔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 눈을 감아 보려 한다.

가지런히 두 손을 무릎 위에 놓고 숨을 고르며 깊이 단전으로 흡- 먼지 한 자락 공기조차도 숨이 멎도록 천천히 호- 아홉을 세도록 가라앉지 않으면 삼세번 아홉으로는 마음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 서툴러 마음이 말을 듣지 않으면 고요한 명상음악을 켜 놓아도 좋겠다.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나를 따라오면 음악은 꺼도 좋으리.

나는 그런 비움의 방을 꿈꾼다. 그곳이 내 마음 방이면 더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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