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 깊은 하늘
일상생활 - 깊은 하늘
  • 안승현<청주공예비엔날레 팀장>
  • 승인 2017.09.05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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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화창한 봄날, 연신 먹이를 나르던 수컷 딱새가 앉은 밤나무 밑에 알알이 갈색을 품은 밤송이가 떨어져 있다. 몇 개는 밤송이에서 일탈해 낮은 곳에 줄줄이다.

밤나무에 걸린 밤송이 끝의 하늘은 어느샌가 뭉게구름 뒤로 높고도 먼 위치를 보인다. 그간의 찌고 삶아내는 듯한 폭염과 모든 것을 녹여내고 휩쓸어간 지루한 비 끝에 살을 휘감아 기분 좋은 바람과 코끝을 지나 들어오는 풀 냄새와 함께 하늘은 높이서 만물을 위로하는 듯하다.

어찌 저리 높을까? 높다 못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길일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논바닥이 갈라지는 상황에서 농심은 억장으로 무너지고, 폭우에 쓸리어 사라지고 덮이는 상황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던 그간의 시간을 무던하게 이겨나가던 기나긴 시간의 숫자만큼 깊을 수도 있을 듯하다.

때를 놓쳐 일을 그르칠 수 없기에 자연이 내리는 형벌과도 같은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기에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에도 바지런히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있다.

잡초처럼 무성한 쪽을 베어 거두어 항아리에 담고, 삭히다 보면 녹색의 쪽에서 푸른 기운을 보고. 녹색의 잎에서 염료가 빠져나오는 정도는 잎의 투명도에서 보는데 물의 온도와 주변 날씨의 영향을 받기에 늘 항아리 안에서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을 감수한다.

그러고도 패각을 태워 양질의 회를 얻어내고, 섞어 삭히는 시간을 갖는다. 가장 무더운 여름에 행해지는 고된 작업의 시간을 허락한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욱 푸르다 했던가?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의 나날, 참아내고 참아낸 시간의 끝에 발현된 하늘색. 남색이다. 남색은 푸르다고만 단순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색이다. 남색은 녹색의 쪽에서 나온 색이다.

남색은 모두가 이겨낼 수 없을 만큼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몸으로 받아내고, 기나긴 시간을 감수해가며, 썩지 않고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삭히는 시간을 가진 결과를 상징하는 색이다. 심연의 하늘, 격한 상황에서 모두가 이겨낸 성취이자 감동일 것 같다.

이제 청주공예비엔날레의 개막을 앞둔 숫자가 한 자리 숫자로 바뀌었다. 더한 형벌과도 같은 시간이 농축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신한다. 참아내고 이루어낸 결과는 쪽빛과도 같이 창대하리라는 것을. 그것은 많은 이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하였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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