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상식과 정의 그리고 진영논리 - 고봉순과 마봉춘에게
방송의 상식과 정의 그리고 진영논리 - 고봉순과 마봉춘에게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7.09.0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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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9월이 파행방송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건 단순히 현상일 뿐이다.

억누르고 옥죄며, 쫓아내고 편 가르기를 거듭하던 방송계의 일방적 독재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언론 노동자들이 마침내 제작 거부와 총파업으로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상식과 정의일 뿐이다.

정권의 나팔수라는 비난에도 침묵하던 굴종을 떨쳐버리겠다는 후배 언론인들의 결기는 그러나 엉뚱하게도 진영논리로 포장하려는 가증스러움과 맞서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상식과 정의'의 자리를 진영논리가 밀어내는 엉뚱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편이 아니면 무조건 좌빨과 종북으로 내몰며 분단국가의 위태로움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가 하면, 그 반대의 입장에서는 수구꼴통으로 백안시하는 대결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런 방식의 이분법은 어느 진영을 선호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만 세상을 대하도록 인식의 틀을 가두는 구조적 모순을 지니고 있다.

정상적인 상태의 방송을 보지 못하는 것은 불편하다. 그러나 인식의 구조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방송계의 모순을 참아내는 일은 불편을 훨씬 뛰어넘는 적폐가 아닐 수 없다.

KBS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고봉순으로, MBC가 혐오의 대상이 아닌 국민의 공영방송으로 되돌아오는 마봉춘의 시대에 대한 회귀 노력은 지극히 상식이며 정의에 대한 실천일 뿐이다.

정권에 의해 장악되었던 공영방송의 정상화 요구는 보수든 진보든 진영을 초월해 결코 허물 수 없는 절대 진리에 해당한다.

춧불혁명이후 터져 나오는 시대상황이거나,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건전한 비판과 권력에 대한 감시는 차별 없이 균등해야 한다.

한때 기자였던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비교적 오래된 지방신문이 보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로 취급되면서 취재를 거부당했던 시절. 자유와 민주라는 존엄한 이름 아래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에게 적대시되고, 또 기자로서의 본래의 사명감마저 발휘할 수 있는 길조차 차단될 때의 굴욕과 울분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상처로 남아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에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지켜야 할 방송인들이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직접 만나야 하는 싸움은 처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강압에 의한 방송의 폭력적 지배로 인해 (국민의)정신과 일상을 교묘하게 조작해내는 적폐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앞으로도 꽤 오랜 세월 동안 세뇌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자발적 동의'로 착각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9월에 비로소 시작된 방송인들의 절규는 타성에 길들여지고 언론인으로서의 투철한 정신과 사명감 대신 그저 그런 월급쟁이로 전락할 위기를 떨쳐내기 위한 값진 외침이다.

정권에 의해 선별된 사람들이 보수의 투사이거나, 최후의 보루쯤으로 포장되는 진영논리는 어설프기 그지없다.

집요하게 굴절된 인식의 프레임을 강요하는, 그리하여 (정권에 의해)선택받은 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억압하려는 시도는 마침내 발각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진영논리에 가두려 하는 시도에 결코 익숙해질 수 없다.

고봉순과 마봉춘, 따뜻하고 그리운 이름들. 돌아오라 우리 곁으로. 더 늦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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