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동사의 맛
만화 동사의 맛
  • 민은숙<괴산 동인초 사서교사>
  • 승인 2017.09.0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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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민은숙

동사. 사전의 정의를 옮겨 적어 보자면 `사물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다. 이 책도 찾아보니`이야기 그림으로 배우고 익히는 우리말 움직씨'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움직씨라는 귀여운 우리말 표현이 존재한다는 걸 이걸 보고 처음 알았다. 더 찾아보니, 명사(이름씨), 대명사(대이름씨), 수사(셈씨), 조사(토씨), 동사(움직씨), 형용사(그림씨), 관형사(매김씨), 부사(어찌씨), 감탄사(느낌씨)란다.

처음 만화 `동사의 맛'(김정선 저, 김영화 만화, 유유)을 봤을 때 성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 만화라니 좋구나 싶었다. 덜 지겹게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한국어 문법 책은 부끄럽지만 끝까지 읽은 적이 거의 없다. 의욕을 가지고 읽었다가 중간에 덮기 일쑤였다. 글을 쓰며 필요한 부분, 헷갈리는 부분만 찾아 읽었던 거 같다. 수없이 도전했으나 포기한 책이 더 많다.

그래서 이 책은 만화니까 끝까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만화인 탓인지 책 읽으면서 다른 문법책을 읽을 때와 달리 공부해야겠다는 욕심을 덜 부리게 된다.

첫머리를 보아하니 원작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원래 교정가인 김정선 선생님이 지은 원작을 김영화 작가가 만화로 그려낸 책이었다. 그런가? 만화로 이 책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건 그래도 이 책이 뭔가 매력이 있으니까 그런 결심을 했겠거니 싶었다. 왠지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즐거우면서도 아쉽게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이유를 되돌아봤다. 일단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에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만화는 교정가로 일하는, 늙은 엄마의 간병을 하며 독신으로 살아가는 여자 외주 교정가 이야기다. (원작은 주인공을 남자로 설정하신 모양이다) 사전을 소설처럼 읽던 남자와 도서관에서 만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분명 둘은 동사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여자와 남자 이야기에 몰입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느낌이다. 동사보다도 둘의 이야기가 더 와 닿는다. 그래서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식을 강요하는 책이 아니라 부드럽게 스미는 느낌이다. 둘의 대화는 동사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지만, 점차 개인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면서 인생의 한 단면을 조금은 엿본 것 같은 그런 드라마가 있었다.

그리고 만화의 특성상, 이미지와 느낌이 쉽게 전달이 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머릿속에 이미지해서 기억하는 것이 기억을 오래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이해에 쉽다고 한다. 만화의 몇 장면을 기억했던 것이 동사를 기억하는데 도움을 준 듯하다. 그러면서 그냥 소설 한 편 읽은 게 아닌, 무언가 내 몸에 좋은 것을 먹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참 좋았다.

이런 책이 필요했지 싶다. 지겹지 않고 유치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유익한 이런 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만화는 원작 일부만 발췌해 만화로 꾸몄다는데, 전 내용을 그냥 만화로 옮겼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원작과 거의 비슷한 책 표지도 너무 마음에 든다. 원작을 존중하며 이야기를 지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아마도 만화가 선생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기에 이 책을 조금은 고통스럽지만 팬의 자세로 만화로 그렸을 것 같다. 오래간만에 만화라는 장르의 힘을 봐서 기뻤고, 원작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생긴 거 같아 기쁘다. 한글날 즈음해서 한번 읽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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